-안동대박물관에서

“원이 아바님께-

자내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시는고

나하고 자식하고 누굴 의지하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먼저 가시는고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하리까

아무래도 내 살 힘없으니 쉬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으니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찬찬히 와 이르소

밴 자식 태어나면 누구를 아비하라 하시느고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아래 또 있을까

꿈에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하고 싶은 말이 그지없어 이만 적노이다...”(요즘 글로 해석한 편지/일부 중략)

안동대 박물관에서 만난 4백년 전의 사부곡(思夫曲),‘원이엄마 편지’  내용이다.

그녀가 쓴 ‘사랑의 편지’는 낭군에게 신겨주려던 ‘미투리’와 함께 세월을 건너 관람객을 맞고 있다.

원이엄마 편지@안동대발물관
원이엄마 편지@안동대발물관

#사부곡 편지

원이엄마 편지는 1998년 이응태(1556~1586) 묘를 이장하다가 발견됐다. 1586년 6월 1일 서른 한살의 나이로 죽은 남편 이응태를 그리워하면서 쓴 그녀의 편지는 고려가요 ‘가시리’를 연상케 한다.

‘가시리~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셜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단 닷듯 도셔오셔소...“

서정이 같다. ‘가시리’가 현세에서 임을 보내는 '이별의 아픔'을 표현했다면,원이엄마 편지는 사랑하는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담은 글이어서 더 애틋하다.낭군의 품 속에 묻어둔 편지는 4백여년이 지나서도  ”꿈에 달려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A4용지 두장 크기의 원이엄마 편지는 한지에 우리말로 적었다.할 말이 얼마나 많았길래,그녀는 편지 여백까지 돌려가며 못다한 말들을 쓰고 또 썼다.잘못 쓴 표현은 덧필해가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원이엄마 편지 원문 앞부분@사진 동이
원이엄마 편지 원문 앞부분@사진 동이

편지는 읽어가다가 끝에 가서 오른쪽 위로 세워 '여백의 글'(맨위 파란색 부분 세줄)을 읽어야 한다. 편지는 처음 글을 시작한 곳에서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글을 맺었다.(빨간색 부분) .마지막 문장이 자칫  첫 문장이 될 수 있으니 편지 첫 문장과 혼동되지 않게 ‘거꾸로 적는’ 기지까지 보였다.

편지는 한글이 나오고 나서 백여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말로 쓴 글이어서 우리말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채로운 대목은 편지 첫 머리부터 나오는 ‘자내(자네)’란 표현(노란색 부분).사랑하는 낭군을 저승 길로 보내면서 남편에 대한 호칭을 ‘자네’라 칭했다.지금 기준으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편지 제목(원이 아바님께)이 깍듯한 존칭으로 시작하고 ‘자내’란 표현이 무려 10여차례나 나오는 걸 보면 이 표현이 당시엔 지금처럼 하대나 동등호칭이라기 보다 존칭이었음을 알 수있다. ‘사랑하는 당신’쯤 되지 않을까 싶다.

미투리@안동대발물관
미투리@안동대발물관

@함께 발견된 미투리

당시 머리카락을 섞어 미투리를 삼는 유습(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준다는)이 있었다고 한다.

참빗으로 머리를 빚다 나오는 머리카락을 모아두었다가 미투리를 삼곤 했다지만 원이엄마는 자신의 검은머리를 아예 뭉텅 잘라 미투리를 만들었다. 애초 발굴단에서는 미투리 재료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러다 짚신 뒤쪽 발고리에 감긴 한지를 조심스레 뜯어보다가 거기에 “내 머리 베어(잘라)~‘라고 적힌 글귀를 발견함으로써 미투리에 쓰인 재료가 원이엄마가 손수 자른 머리카락 임을 알게 됐다는 것.

남편이 낫기를 기원하며 만든 미투리는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의 머리 맡에  '저승 꽃신발'로 넣어야 했다. 청상의 흐느낌을 담은듯 미투리는 여전히 진보라빛 광채를 띠고 있다.

@원이

’편지에 등장하는 ‘원이’는? 부부의 다른 아이라는 게 통설이나 ‘뱃속 아이’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편지에 나오듯 부부는 생전에 뱃속아이 얘기를 나눴다.베갯머리에서 태어날 아이를 ‘원이’라 미리 이름지은 건 아닐까...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박물관을 한참이나 뱅~뱅~  돌다 나왔다.

@귀래정

원이엄마의 남편 이응태는 고성이씨 참판공파로 귀래정을 세운 이굉의 고손자.귀래정의 유지가 고손자대인 이응태 부부로 전해져 유품으로 다시 현세에 돌아왔음(귀래)이 분명했다.

여운이 진했던 안동대박물관. 다음 행차땐 귀래정도 한번 들러봐야 겠다.

자료 안동대박물관
자료 안동대박물관

#부기=안동대박물관은 '450년만의 외출'이라는 주제로 1998년 9월 25일에서 1999년 2월 말까지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원이엄마 편지와 미투리를 상설 전시 중이다.

미투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 안동 '원이 엄마'의 애달픈 사연이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지오그래픽’(2007년 11월호)에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박물관측은 원이엄마 편지를 영문과 일본어,중국어로도 번역해 사본과 함께 관람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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