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뉴스를 진행하던 필자는 기사를 예독하다가 “이건 뭐지?”하고 다시 읽어본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의 갭투자 의혹에 대한 국토부의 해명이었는데 내용은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발표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왜 차관이 집을 사고 판 내용을 정부 기관인 국토부가 해명을 하고 나서는 거지?’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공관을 사고 판 것도 아니고 개인이 집을 사고 판 건데 당사자는 어디 가고 국토부가 나서서 해명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차관쯤 됐으면 본인이 나서서 개인적인 의혹에 대해 소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부 부처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면 자신 때문에 자신이 속한 조직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 도리일 텐데 도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명을 하는 국토부나 그걸 뒤에서 숨어서 보고 있는 차관이나 국민이 얼마나 쉽게 보이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갭투자라는 정황증거가 확인되면서 결국 이상경 차관은 면직되었습니다만, 그 여파로 10.15 부동산 대책은 공염불로 인식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국토부의 해명은 경우에도 맞지 않고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데도 이를 기사화한 언론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왜 당신들이 나서서 쉴드를 쳐 주는데?”라고 물어본 기자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입니다. 아직 장관 임명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각 부처가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인사청문회 지원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합니다. 정부 부처는 사사로운 조직이 아닙니다. 부처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담당 업무만으로도 야근을 반복해야만 하는 곳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임명되지도 않은 민간인 신분의 장관 후보자를 위해서 정부의 고급 인력들이 후보자의 개인적인 청문회 준비를 돕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인사청문회 때부터 부처 직원들이 시종처럼 보좌를 해주니 장관, 차관 같은 임명직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일까지도 보좌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인사청문회의 경우 정책과 관련한 질의에 답변을 하기 위해선 임명될 부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어도 개인의 도덕성 검증까지 도움을 받는다면 이 또한 부적절한 처신이 될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공사를 구분해서 일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보통의 경우 대통령실에서 후보자의 청문회를 도울 것을 지시하는 공문을 소관 부처에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도움이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것이라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의 한계를 업무와 관련한 공적인 부분으로 명확히 하고 있는지 챙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회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의 자녀 결혼이 문제가 됐습니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의 결혼을 챙기지 못했다.”는 말이 회자됐는데 여러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축의금을 돌려줄때 보좌진이 관여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었습니다.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기업조차도 임원급의 자녀 결혼은 소리소문 없이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의 입사 동기 중 전직 차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결혼할 때 축의금과 화환을 일절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정과 비리가 과거에 더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과거에 더 양심적인 지도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직위를 보고 주는 축의금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축의금을 보좌진을 시켜서 돌려주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위입니다. 보좌진은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행위는 갑질에 해당합니다. 축의금은 개인이 받은 겁니다. 돌려주는 것도 개인이 알아서 돌려줘야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데 수리 지시등 사적인 업무를 시켜서 낙마했는데 “난 그래도 돼.”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작은 지위라도 지위에 따른 권력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권력에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조차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권력은 쓰지 않을 때 더 존중받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있는 수단 없는 수단 다 동원해서 권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넘어버리고 그걸 문제 삼으면 정치적 공세로 몰아붙입니다. 종국에는 모든 잘못의 마지막 피신처인 정치적 희생양으로 자신을 둔갑시킵니다. 이 공작이 먹히면 살고 먹히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렇지만 잃을 게 없습니다. 만에 하나 다시 정치를 시작할 때쯤이면 구체적 잘못은 잊히고 자신이 뿌려놓은 정치적 희생양 프레임이 싹이 터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위 논란이 있는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사실로 드러난 잘못에는 엄중히 문책하고 본인도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확실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으면 사회적 메시지가 “그래도 되는구나.”로 전달됩니다.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그래도 돼.”가 있었는지 이 자리에서 열거하기 시작하면 쓰는 필자도 읽는 독자도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서 열거하지 않겠지만, 이제 제발 “난 그래도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오각성하여 딴사람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조용히 퇴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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