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난 4월 공개한  '오즈의 마법사' 재해석 프로젝트 자료 사진@연합뉴스
구글이 지난 4월 공개한  '오즈의 마법사' 재해석 프로젝트 자료 사진@연합뉴스

김언수의 소설 <캐비닛>에는 마법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양이로 변하고 싶다는 의뢰인과 함께 유명한 마법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법사는 마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들을 데리고 술집으로 가 소주만 주야장천 마신다. 결국 주인공은 마법사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의심받자 마법사는 소주를 물로 바꾸는 마법을 그들에게 몸소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소주를 물로 바꿀 수 있지만, 물을 소주로 바꾸지는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이 모습을 본 주인공이 의뢰인을 고양이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마법사는 삼십 년이 걸린다며 딱 잘라 말한다.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다는 푸념에 마법사가 호통을 치면서 말하는 대사는 가히 이 소설의 압권이다.

"자네들은 사람이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 장난인 줄 아나? 영화에서 나오는 변신 마법 있잖아. 주문 외우면 두꺼비로 뚝딱 바뀌고 그러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 정도 고수가 있다는 얘긴 마법사 인생 오십 년에 들어본 적도 없어. 그리고 그건 마법이 아니야. 마법은 오랫동안 서서히 일어나는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게 다 마법이고, 자연이라는 게 다 마법이야.

갓 태어났을 때의 그토록 조그만 아이가 이 사람처럼 덩치 큰 장정이 되고, 다시 작아져서 꼬부랑 노인이 되고, 다시 흙이 되고 바람이 되는 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기적적인 일이지 않나? 저 나무들을 봐.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한정 없이 울창해지고, 가을이면 풍요로워지고, 겨울에는 그 많은 잎과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한철의 죽음을 넘기지 않나. 참 신비로운 일이지. 이런 게 다 마법이야."

나는 소설을 읽을 당시에도 이 문장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최근 아이가 생기면서 이 문장을 더 가슴 깊이 새길 듯 하다. 불과 8개월 전 처음 초음파로 우리 아이를 봤을 때는 정말 콩알보다 작았다. 당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니까, 저 콩알만 한 게 35주 후에는 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거지? 솔직히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매달 산부인과에 아내와 함께 가며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다. 손과 발이 생기고, 진짜 점점 아이의 형태를 갖춰갔다. 아이가 커지는 것과 더불어 아내의 배도 정말 걱정스러울 정도로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서 움직이는 것도 손으로 느끼면서,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매일 밤 아내의 배에 손을 대고 동화를 읽어줄 때면 유독 많이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문득 내 말을 알아듣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게 벌써 쑥쑥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이것이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러다 엄마 배에서 나와 금방 걸음마를 하고, 말을 하고, 내가 쓴 이 글을 읽는 날을 꿈꿔본다.  후에 이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빠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무엇을 하든 전폭 지지해줄 생각이다. 그뿐 아니다. 더 큰 마법이 일어나 녀석이 나만큼, 나보다 더 커졌을 때 아이와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아빠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꼰대 짓도 좀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때까지 나도 아이에게 "왕년에 아빠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아이가 수긍하고 고개 끄덕일 수 있도록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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