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꾸준히 이어가면 그 자체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진로가 훤히 보이는 알려진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아프리카TV(현 SOOP)에서 스타 프로게이머들의 방송을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국내에서 라이브 방송은 아프리카TV가 대세였다. ​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었고, (물론 이때는 삼촌들 곁에서 구경만 해도 아주 좋았다. 7살의 고사리 손으로 하기에는 스타는 너무 어려운 게임이었다)

 '온게임넷 에버 스타리그' 
 '온게임넷 에버 스타리그' @자료사진 연합뉴스

2000년대 초부터 온게임넷이나 MBC게임 등지에서 스타 리그를 정말 자주 봤었다. 하지만 추억이 가득했던 스타리그가 2010년대 초에 불미스러운 일로 사라진 이후로 가끔씩 스타 프로게이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긴 했었다.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는 연예계에 데뷔하기도 했다지만, 대다수 젊은 선수들은 어려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에 직장과 산업이 사라진 것이니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2013년 경에 대학 친구를 통해 아프리카TV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다. 이곳에서는 꽤 많은 스타 게이머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그 모습들을 보면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2010년대 후반까지도 한 번씩 생각날 때면 방송을 찾아서 들어가 보곤 했다. 스타 BJ들은 스타 말고도 여러 콘텐츠들을 했는데, 뭔가 감성이 안 맞는 부분이 있어 푹 빠져서 즐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2010년대 후반에도 많은 전 프로 출신들이 합류했고, 2016년부터 아프리카TV 주최로 ASL 스타리그가 운영되면서 스타가 다시 부흥하는 것 같아 내 일처럼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는 모든 스타 게이머들이 인기가 좋은 건 아니었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생계를 위한 본업을 따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프리카TV 스타리그(SOOP 캡처)
아프리카TV 스타리그(SOOP 캡처)

그리고 그 이후로 또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간만에 아프리카TV에 들어가 봤다. 몇 년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플랫폼 명이 SOOP으로 바뀌어 있었고, 예전에 곧 입대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미 전역을 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난 선수들도 있었다. 세월이 참 흐르긴 흐르는구나, 싶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몇 년 전에는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려나' 생각했던 선수들이, 어느 정도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방송을 그만둔 이들이 훨씬 많겠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자기 일을 지속해 온 사람들은 스스로도 자부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 유튜브가 완전히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누군가가 지나오거나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을 듯하다. 특히 생계의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개중에는 이것밖에 할 게 없었다, 라고 웃어넘기는 이들도 있지만, 그간의 고생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웃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요즘 세상에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이 아니기에, 매일 같이 수많은 불안과 싸우면서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이들이다.

​사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본질적으로는 이런 시간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이들의 경험을 참고할 순 있겠지만, 그 상황이 나의 처지와 꼭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시시각각 나를 괴롭힌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조조금은 따뜻한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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