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이대남, 틀딱 등 세대를 지칭하거나 비하하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김치녀, 된장남 등 사회 갈등을 조장하거나 특정인들을 비하하는 용어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위 '갈리치기'와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혐오 문화를 양산해 내고 그 중심에 있는 세대가 바로 20대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갈라치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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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20대는 왜 이렇게 혐오 문화를 조장하고,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먼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20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20대, 특히 남성들은 '좌파' 혹은 '진보'이자 선봉에 선 이들이었다. 이런 사회 기조가 2000년대까지는 비교적 유효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유난히 많은 정치적 사건이 있었던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중도층이 사라진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슬슬 젊은 우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맥락은 2000년 후반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긴 디씨인사이드나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음지에만 있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양지로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유튜브의 활성화다. 유튜브를 통해 많은 20대 남성들의 소위 '보수' 정권을 지지하고 옹호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대 젊은 우파를 자처한 유튜버들은 60대 이상의 세대와 결합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시작했다. 몇몇 20대에게 이런 상황은 또 다른 기회의 땅이었다. 물론 이런 기회주의 성향을 가진 이들은 비단 20대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그저 사회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서 드러나듯, 20대, 특히 소위 이대남들의 '보수화' 현상은 그저 현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보수화는 어쩌면 보수화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이 자리한다. 특히, 이들의 보수화에 가장 기여하고 있는 것이 소위 '강남 좌파 정치인'과 '스윗 영포티'다. 이들에 대한 반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이대남'들의 보수화는 점점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의 20대가 진보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1980년대에도 일부 언론과 지식인층은 '20대 개새끼론'을 부르짖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시기만 해도 20대가 이런 정치 투쟁을 통해서 얻을 것이 더 많았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치 투쟁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20대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20대는 베이비부머 끝물 세대로 미래를 이끌 다수 세대였다. 특히, 많은 머릿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지금의 20대는 아니다. 머릿수도 줄었지만, 양질의 일자리도 너무나 줄었다. 위로 너무 많은 30대와 40대, 50대와 60대가 있다.

고령화 사회의 단면은 결국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에 목줄을 달았다. 그뿐인가? 20대 남성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과도 싸우고 있다. 단합해 자신들의 권리를 외쳐도 파이가 줄어든 시대에서 이들은 단합보다는 '혐오'를 외쳤다. 엄연히 말하면 20대가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니다. 기성 언론과 세대의 프레임이 이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따라서, '세컨드 찬스'가 없는 현 20대는 어떤 의미로든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기회를 잃는다면 더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회귀나 부활, 리셋 등을 다루는 웹소설이 유행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여기에 이제는 N포 세대라고 말조차 더는 무의미할 만큼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마저 박탈됐다. 어쩌면 거세됐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사회적 욕망이나 계급 상승 욕구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이제 승자 독식의 사회와 약육강식의 사회가 도래했다. 이로 인해 도태해 가고 있는 다수의 20대, 청년층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150여년 전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하부구조인 경제가 상부 구조인 정치와 문화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 젊은 세대는 비트코인과 주식, 부동산 등 도박과 같이 한탕주의에 매몰하게 됐고, 이로 인해 공존보다는 약탈적인 사회 분위기가 경제 전반에 깔려 있다. 타인의 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내가 올라가지 못하는 무너진 사다리에 갇히게 됐다.

따라서 이 보수화된 20대의 냉소 어리고 조롱 가득한 글을 볼 때마다, 거부감보다는 알 길 없는 비참함이 몰려온다. 특히, 그 어느 시대보다 허위와 날조가 판치는 시기에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늘 누가 얼마를 벌었나, 어떻게 벌어야 하네, 자신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만 보여준다. 비단 기성 언론만이 아닌 유튜브를 비롯한 모든 매스미디어가 이미 본질을 잃고 변곡점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탕주의의 성공이냐, 실패의 갈림길에서 체념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는 '보수화'라는 길로 이어진다. 도돌이표이자, 벗어날 수 없는 우로보로스의 꼬리 같은 것이다.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결국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게 된 한국 사회에서 이제 젊음은 더는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짐을 져야 하는 아틀라스의 형벌과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슬픈 우리 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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