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외국군 없이는 자주국방이 어렵다는 말은 굴종적”이라고 했다.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강력한 자주국방의 길을 열겠습니다’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외국군이라면 주한 미군일 것이다.

주한 미군 없이 자력으로 방위를 할 수 있을 때 굴종적이지 않다는 얘기인데, 그것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치고 자주국방을 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도 적대세력과 전쟁할 때 혼자 하지 않는다. 2차세계대전을 비롯 한국전, 월남전과 숱하게 치른 중동전에서 그랬다.

전쟁하는 나라들은 동맹국들과 연합군을 만든다. 전쟁할 능력이 모자라서이기보다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방의 협조가 필요하다. 강대국이 정당한 명분의 전쟁을 하더라도 우방들이 외면하면 독불장군의 힘자랑에 불과하다.

서유럽의 나라들은 하나하나 경제·군사적으로 강대국이다. 이들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에서 간접 전쟁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와 대결함에 있어 나토 국가들조차 자주국방보다 미국의 동참을 필요로 한다.

한미 연합훈련@자료사진 연합뉴스
한미 연합훈련@자료사진 연합뉴스

최강국도 우방과 협력하여 자주국방을 하는 마당에 하물며 개별 약소국이야 말할 것도 없다. 유사시에 도와줄 외국군이 많을수록 그 나라의 안보는 튼튼해진다. 적대세력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침략을 예방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안보는 주한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국은 유엔의 깃발 아래 우방국들과 함께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북한 중공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냈다. 미국은 그 전쟁에서 3만 6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 한국과 혈맹이 됐다.

1953년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미국이 나토 외에 개별 국가와 맺은 5개의 상호방위조약 중의 하나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그것이 한국 안보의 튼튼한 토대가 돼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두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되었다.

방위력과 방위산업 능력은 경제력보다 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같은 글에서 한국이 세계 5위의 군사력 보유국이라고 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덕에 한국이 부자가 됐으니 대가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는 1기 집권 때부터 한국에 대해 미군 주둔비를 10배 가까이 올린 100억 달러를 내라고 했고, 2기 집권에 들어선 한국의 곳간에 쌓아둔 외화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외환부족으로 IMF사태를 치른 한국에 대해 보유 외화의 70%를 내놓으라는 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다.

한미 관계가 이처럼 미묘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굴종적’ 발언이 나왔다. 듣기에 따라서는 주한 미군의 철수를 감당하더라도 미국의 부당한 압력은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 대통령 개인으로선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발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상에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줄 나라가 미국 말고 과연 존재하느냐는 문제를 생각한다면 주한 미군에서 굴종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다. 한국의 자주국방은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존재하는 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재래식 무기에 대한 핵무기의 비대칭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은 북한의 핵공격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북이 통일 되든지, 평화공존을 하게 된다하더라도, 한반도가 중국 러시아와 심지어 우방인 일본과도 충돌할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반도와는 오랜 세월 적대관계였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중 간 경제교류가 긴밀해졌지만, 안보 및 이념의 차이로 빚어지는 긴장의 요인은 상존한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병력을 파병한 이후 북·러 밀착이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이들 인접국들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을 품었던 나라들이다. 이에 비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미국은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국가였고, 그것이 우리가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그렇다 해도 한미 관계는 다른 나라와 대체하기 어려운 특수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 추구를 최우선에 두고, 이념이나 동맹보다 거래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면서 여러 동맹국들과 불편한 관계다.

한국이 처한 상황도 그중의 하나다. 관세 협상과 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미국의 과도한 압박이 체감되고 있던 터에 미국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이민단속반의 부당한 조치를 목격한 국민들의 분노를 외면할 수 없는 게 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그렇다 해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할 때는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할지언정 반미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 이 대통령의 ‘굴종적’ 발언이 반미적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신이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말끔히 씻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미국에 대한 배신적 또는 대결적 대응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낳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고, 충동적인 정책 결정도 잦다. 주한 미군 철수나 감축은 미 국익에도 반하고,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조자룡 헌 칼처럼 휘두르는 행정명령으로 부분 감축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소규모 감축이라 해도, 그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고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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