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난 이후 역시 올해에도 몇몇 수능 문제의 정답에 대한 당위성 논쟁이 뜨겁습니다.
수능점수가 입시생들에게는 절대적인 평가점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현 입시제도하에서, 한 문제가 맞고 틀리는, 특히 배점이 3점~4점으로 높은 경우에는 그 문제의 정답 결과로 인해 한 학생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출제 문제와 정답의 명확성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올해 수능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국어 17번 문항(3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문제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고,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분들의 논거 자체도 불분명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국어 문제에서 지문 자체의 학문적, 논리적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불요하고, 따라서 그 지문을 전제로 제시도니 문제에서 타당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인 만큼, 우선 논란이 된 그 문제를 다소 장황하지만 풀어보고자 합니다.
국어 14~17번 문항의 기본 지문의 전제는 “인격의 동일성은 모든 생각의 기본이다.” 라는 것이고,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위 지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칸트 이전 유력한 견해 : ‘생각하는 나’(자기의식)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함으로써 인격의 동일성이 유지된다.
2) 칸트 : 자기의식은 인식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 생각의 구성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이를 위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복수의 주관이 동일한 인격으로
인식된다.’라는 가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3) 스트로슨 : 시공간적 세계에서 신체를 매개로 한 경험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을 뒷받침한다.
4) 롱게네스 : 인격의 동일성의 기준은 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통시적으로 인식하는 신체이다.
이를 바탕으로 14번부터 16번의 문제가 이어진 다음, 추가적인 <보기> 지문을 이용한 17번 문제가 등장합니다.
17.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것은? [3점]
<보 기>
갑 :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을 : 그렇지 않아.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본래의 자신과 동일한 인격이야. 비록 프로그램은 신체가 없지만 우리 두뇌와 프로그램이 수행하는 사고 기능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거든. 인격의 동일성은 어떤 가정도 두지 않고 이러한 사고 기능의 동일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해.
①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만으로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갑의 입장은 옳겠군.
② 스트로슨의 견해에 의하면, 신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에게 인격이 귀속될 수 없다는 을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④ 칸트의 견해에 의하면, 인격의 통시적 동일성은 그것에 대한 가정이 선행될 필요 없이 사고 기능의 동일성을 통해 판단된다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⑤ 롱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과 상이한 존재에 의해서도 동일하게 수행될 수 있는 사고 기능이 인격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을의 입장은 옳겠군.
이 문제는 인간의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될 수 없다는 ‘갑’과 시고 기능에 이상이 없는 한 동일한 인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을’의 주장을 나열한 <보기>를 기본 지문의 4가지 각각의 견해들이 옳다고 가정할 경우, ‘갑’과 ’을‘ 주장의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하여 정답을 추론해 내는 문제입니다. 다소 복잡하고 난해해 보일 수 있으나, 기본 지문의 4가지 견해를 하나씩 ’참‘이라고 할 때, ’갑‘과 ’을‘의 주장이 ’참‘ 일지 ’거짓‘일지를 판별해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이 발표한 정답은 ③번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이었으나, 커다란 오류가 존재합니다. ③번이 정답이 되기 위해서는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가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도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된다고 주장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위 기본 지문 에서 보듯이,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는 단순히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아닌,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도 단일한 주관이라는 것을 칸트 이전 유력한 견해도 인정했을 것임이 지문에 제시되거나 별도로 증명되지 않는 한, 그 견해 따라 ‘갑’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은 참일 수 없기 때문에 ③번이 정답이 될 수 없고, 결론적으로 17번 문항의 정답은 없게 된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도 단순한 시험문제의 실수를 넘어 우리 사회 입시제도의 구조적 불합리함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능 한 문항 때문에 수많은 수험생의 운명이 흔들릴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입시제도 개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1, 신뢰성을 훼손하는 현 수능의 문제점
수능 오류는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가 법원에서 정답 취소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었고, 생명과학Ⅱ의 고난도 문항에 대해서도 오류 판결이 나온 적도 이었습니다. 이런 오류와 논란이 단순한 해프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수능이 수험생 인생의 분기점, 대학 진학과 장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류 하나, 채점 기준 하나가 학생의 등급, 합격 여부, 장학금 기회까지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시험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출제문제의 보안성을 위해 출제과정이 폐쇄적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고난이도 문제는 다수의 전문가들의 사전 검증이 필요합니다. 올해에는 사인펜 번짐으로 인한 답안지 표기 문제까지 발생하여, 보기에 사소한 장비의 결함이 시험공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문제조차 학생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스트레스와 불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2. 수능 중심 입시제도의 구조적 한계
현재 수능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명목으로 운용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수험생의 삶 전체를 걸고 도전해야 하는 단일 판단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사교육 근절”을 명분으로 본고사를 폐지하고 수능을 중심으로 입시제도를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사교육은 더 심화되었고, 입시 전형은 비정상적으로 복잡해졌습니다. 지금은 수시·정시·학생부종합전형 등 3,200여 개 전형이 운영되며, 여러 전형의 구조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부모와 학생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수능 한 문제에 대한 논쟁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학생들이 이를 두고 이의 신청을 해야 하는 현실은,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심리적·정책적 위험이 너무나 큽니다.
3. 대학의 자율성과 다원적 평가의 필요성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자체적인 평가 기준을 갖고 다원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수능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대학들이 학생을 ‘수능 점수 기계’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이 진정으로 학문 공동체를 이루고 발전하려면, 단순한 점수 외에도 학생의 학습 태도, 잠재력, 탐구 능력, 인성 등을 평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학업 외 활동, 자기주도성, 리더십 등을 보는 전형이지만, 이 역시 컨설팅과 스펙 경쟁의 과열로 공정성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따라서 대학 입시제도 개혁의 핵심은 수능 배제나 폐지가 아니라, 수능의 역할을 재설정하고 대학 자율 선발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다양한 평가 요소를 고려하면, 학생들은 단 하나의 시험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고, 한 문제의 오류로 운명이 좌우되는 부담도 줄어듭니다.
교육 본연의 가치 회복을 위하여
입시는 ‘시험’, ‘점수’ 중심이 아니라 배움, 성장, 잠재력을 중심으로 재구조화되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입시가 단순히 경쟁의 도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격 형성, 비판적 사고, 사회적 책임감 형성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수능 한 문제의 오류로 수많은 수험생이 불안해하고, 한 줄의 정답을 두고 사회가 설왕설래하는 모습은 결코 건강한 입시제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백년대계를 생각할 때, 대학이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닙니다. 대학은 자신의 특성과 철학에 맞는 학생을, 학생은 자신의 다양한 능력과 잠재력을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출제의 투명성 강화, 구제 제도 마련, 다원 평가 확대, 그리고 제도의 간소화 등 실질적인 개혁을 추진해야만 할 것입니다.
수능이 학생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무게추가 아니라, 하나의 잣대일 뿐인 제도로 거듭날 때, 우리는 비로소 공정하고 의미 있는 대학입시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수능 한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꿈과 능력을 바탕으로 길을 열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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