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북극성은 보통 길잡이 별로 통한다. 대항해 시대 때 뱃사람들이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한 데서 그 의미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극성이 어떤 별인지 찾아보니 그것은 사실 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순위였다. 자전축 가장 가까운 곳에 떠 있는 1순위 별. 그래서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면서 바뀐다는 것이다.돌아보니 내 인생 항해에도 나의 자전축을 밝혀주는 서로 다른 이름의 북극성들이 있었다. 엄마, 절친, 애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 쉼 없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드디어 엄마가 집으로 오게 되었다. 15개월 만의 귀향이었다. 비록 단 하루 허락된 외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외출은커녕 단 십분 간의 비대면 면회도 수시로 금지되어 온 암담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감회가 더 새로웠다. 올해로 구순을 맞이하는 엄마는 3년 전에 고향 근처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차례대로 찾아오는 이런저런 노환으로 자식들 집에 머물기도 하고 자식들이 돌아가며 고향 집에 함께 머물기도 한 지 8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우리 육 남매 모두 서울 경기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지옥’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어벤져스의 모습을 닮은 저승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너는 몇 날 몇 시에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예언을 하면 예언을 받은 사람은 어김없이 그날 그 시에 온갖 잔인한 폭력 속에 살해를 당한다.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지옥행을 예언 받은 그 순간부터 이미 지옥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드라마와 상관없이 나는 올 일 년 동안 수시로 ‘지옥’을 떠올렸다. 비질(Vigil)을 다니다 보면 도살장이야말로 실존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잎싹이는 태어난 지 채 5개월이 되지 않으리라고 추정되는 어린 암탉이다. 암탉은 보통 생후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데 도계장에서 구조되어 한 활동가의 집에서 보호받은 지 4개월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초란을 낳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그녀의 월령 수를 가늠해 보았을 때 그렇다.지난 6월 23일, 나와 함께 동물권 활동을 하고 있던 서울애니멀세이브 내의 소모임 원들이 초복 대비 비질(Vigil : 동물이 고통받는 현장을 찾아 이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할 만한 장소를 찾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7월 7일 수요일, 나는 난생처음으로 첫 지하철을 탔다. ‘서울애니멀세이브’에서 초복(初伏) 대비 비질(Vigil)을 할 장소로 정한 경기도 북부의 한 도계장 앞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거의 세 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다. 그곳뿐만이 아니라 비질 소모임 원들과 매달 정기적으로 다니는 소, 돼지 도축장 역시 우리 집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먼 거리인 경기 남부지역에 있다.나는 원래 나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 먼 곳에 가는 것은 질색인 편이라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오피니언타임스=박정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 개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다. 수십 년 전 농촌에서는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곤 했는데 자기 집 개를 먹지는 않고 대신 서로 키우던 개를 바꾸어서 잡아먹곤 했다. 그래서인지 복날이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개와 그런 개를 잡으려고 뒤쫓는 젊은 남자들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며 엉엉 우는 것뿐이었다. 땅을 치고 기둥을 붙잡고 그렇게 울부짖어도 우리 백구는, 우리 누렁이는 소나무에 묶여 몽둥이에 맞아 죽은 뒤 한 그릇의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돼지처럼 모순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고기로서 사랑받는 그들은 고사상의 메인 메뉴이자 제발 꿈속에 나타나 줬으면 싶은 재물과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살아있는 동안에는 따뜻한 관심과 살뜰한 보살핌 한 번 받아보지 못하다 생후 6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반납하고 고기가 되기 위해 무관심 속에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요행히 구제역이라도 터져주면 거대한 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는 그 날벼락의 순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인간들도 그 순간만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아버지를 여의고 고향 테바이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통치자 크레온의 법령을 어기고 죽은 오라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낸다. 크레온은 그녀의 오라비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전사한 그에게 어떠한 장례 절차나 애도 의식도 행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안티고네가 그 금령을 깨뜨린 것이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법적 규약에 대항하면서, 다른 근거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즉 크레온의 법령은 인간의 법일 뿐 그녀에게 더 의미 있는 것은 불변하는 ‘신의 법’이라는 것이다. 신의 법은 가족의 죽음에 애도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 까닭은 비행기가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할 때의 그 울렁증이 좋았다. 생활에 짓눌려 가라 앉아 있던 오감과 감수성이 깨어나는 그 기분을 누려보고 싶었다. 구름 위를 날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비행의 시간이 나를 젊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여행을 감행했다.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을 떠날 엄두를
[논객칼럼=박정애]태풍 속으로 달렸다. 취소 불가능한 예약이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도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해 단 시간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후 우린 콘도에 고립되었다. 모든 출입문이 폐쇄된 로비를 거닐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순간 출입문 한쪽이 퍽 소리를 내더니 유리 파편이 흘러내렸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유리들도 깨질까봐 겁이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방 안에 갇혀 거센 파도와 꺾일 듯이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들, 그리고 신들린 듯이 나풀거리고 있는 현수막, 살수차로 뿌린 것처럼 사
[논객칼럼=박정애]너도 말하라,가장 마지막 사람으로서 말하라,너의 말을 하라 말하라그러나 아니다를 그렇다와 가르지 마라.너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라그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라. 그림자를 충분히 드리우라,그것에 충분히......파울 첼란의 ‘너도 말하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한 그는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을 말하라고 절규한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그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하라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붙들어 세운다.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돌아서는 독자를 멈
[논객칼럼=박정애]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소득 분배가 전제되어야만 한다.먼저 소득의 종류와 발생 원인을 살펴보자. 소득에는 노력소득과 불로소득이 있다. 그 중 노력 소득은 말 그대로 노력과 운의 결과물이다. 반면에 불로소득은 특권과 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력소득이든 불로소득이든 어느 정도의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그것이 노력이냐, 특권이냐이다. 그 중 특권은 사회가 만든 인위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권을 갖지 못한 다른
[논객칼럼=박정애]‘인 더 더스트’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지진과 함께 파리에 원인 불명의 미세먼지가 차오르고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죽어간다. 이 영화는 미세먼지가 얼마나 무서운 살인자인지를 세상에 선포한 일명 ‘미세먼지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환경의 역습으로 인해 수많은 재앙이 들끓고 있는 지금,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미세먼지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고민해 보기로 하자.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먼지에는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논객칼럼=박정애]고향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 하나는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줄이 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야 하는 깊은 우물이었다. 그 우물은 각 가정에 수도 시설이 없던 그 시절, 동네 사람 모두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튼튼한 나무 기둥 네 개를 세우고 파란 기와지붕까지 얹어 우리의 샘물을 소중하게 보존하였다.또 하나의 우물은 동네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키 낮은 분화구처럼 생긴 그 우물을 가운데 두고 주변엔 온통 논밭이었다. 그 우물은 들일에 지친 어른들의 휴식처였다. 일하다 땀이 많이
[논객칼럼=박정애]코로나로 인해 2020년의 봄은 일그러져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고 고통받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라도 감염될까 싶은 두려움에 봄꽃들의 향연도 만끽하러 떠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개학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정지수 또한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매일 신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마스크 행렬이다.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고작 1500원 밖에 하지 않는 물품이지
[논객칼럼=박정애] 집안일 중 가장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분리배출이다. 캔, 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등 종류별로 모아둔 것을 카트에 싣다 보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플라스틱 제품들이다. 분리배출일마다 ‘사는 게 쓰레기를 양산하는 일이구나’하는 것을 절감하고 지구에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하지만 꼼꼼하게 분류해서 내놓은 쓰레기들이 소중한 자원으로 재활용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귀찮음을 이겨내며 하나라도 잘못 들어갈세라 매의 눈으로 살피며 각각의 포대에 쓰레기를 나누어 담곤 했다.그런데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아
[논객칼럼=박정애] 1월 하순에 접어들도록 제대로 된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겨울. 기후 온난화를 실감하는 이 겨울에 어떤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레타 툰베리!그녀는 올해 17세가 되는 스웨덴 소녀이자 ‘기후정의운동’의 최전선에 선 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학교 파업을 선언하고 1인 시위를 통해 전 세계 시민들이 ‘기후위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이 드디어 2019년 9월 21일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 비상행동’을 이끌어 냈다.‘IPCC’라는 약자로 잘 알려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에서 다섯 차
[논객칼럼=박정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저자가 강연 중 ‘자신은 결정 장애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휠체어에 타신 어떤 분이 꼭 ‘장애’라는 표현을 써야 했느냐고 묻는다. 그제야 저자는 자신이 무심코 뱉은 표현에 혐오의 날이 서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 다 되었네요.’ 혹은 ‘똥남아, 똥꼬충, 급식충, 틀딱충, 맘충, 김 여사’와 같은 표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한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
[논객칼럼=박정애] 나는 지금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10년째 살고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한 동네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니 이제 이 동네 사람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10년 내내 공사가 멈춘 적이 없다. 이사 오기 전부터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수 천 세대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미분양도 꽤 된다고 하니 이제 더 이상 짓지 않겠지? 하고 내심 기대했건만.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지하철 공사와 더불어 초역세권을 내세우는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또 시작되었다. 교통 혼잡은
“나 이거 먹을란다.”슈퍼마켓 아이스크림 냉동고 속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하드 하나를 가리켰다. 비비빅이었다. 시골에 계실 때도 날마다 하나씩 드셨다고 한다. 나는 냉동고 문을 열고 비비빅 열 개를 집어 들었다. 그 중 한 개는 곧 바로 비닐 껍질을 벗겨내서 엄마 손에 들려 드렸다. 엄마가 활짝 웃으셨다. 유치원생처럼 느껴졌다. 나이를 불문하고 내숭 없는 순진함은 귀여움을 유발한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올해 여든 여섯이 된 엄마는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살러 오셨다. 뇌출혈, 뇌졸중을 차례대로 앓으시고도 냉동고 속 비비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