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난 이후 역시 올해에도 몇몇 수능 문제의 정답에 대한 당위성 논쟁이 뜨겁습니다.수능점수가 입시생들에게는 절대적인 평가점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현 입시제도하에서, 한 문제가 맞고 틀리는, 특히 배점이 3점~4점으로 높은 경우에는 그 문제의 정답 결과로 인해 한 학생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출제 문제와 정답의 명확성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올해 수능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국어 17번 문항(3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문제 오류를 지적
시간의 '어긋남(Disjuncture)'을 응시하는 새로운 사유의 틀, 하운톨로지(Hauntology)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예술의 영역은 단순히 현재의 아름다움이나 당대의 현실만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존하지 않는 것들, 사라진 것들의 '잔향(殘響)' 혹은 '유령'을 호출하고, 현재의 견고함에 균열을 내는 사유의 흐름, '하운톨로지(Hauntology)'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다소 생경한 이 단어는 '유령(Haunt)'과 '존재론(Ontology)'의 합성어로, 그 어원에서부터 철학적인 역설을 내포하고 있
안개 자욱한 바다 한 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담론도 제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집단이성의 힘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우리 민주주의의 언어들이 노이즈 가득한 ‘아무 말들’로 표류하여, 그 내용과 형식적 측면에서 60-70년대에 못지않은 심각한 질적 저하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정치인들의 언명이 기본적인 논증의 틀조차 갖추지 못한 채 발설되면, 언론에서는 이를 검증, 평가하지 않고 인용하고 유투브, SNS 등에서는 선정적으로 증폭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이성적 토론과 합리적 의사결정 과
사진은 탄생 이래로 현실의 '결정적인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기록하는 가장 강력한 매체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나의 셔터에 한순간의 진실을 담아내고, 그 진실이 과거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사진의 본질이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명제에 도전하는 사진적 실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다중이미지 기법이 바로 그 중 하나입니다.다중노출 사진술은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노출을 하나의 이미지로 겹치는 기술이며, 그중 두 개의 노출을 겹치면 '이중 노출(double exp
지난 5월 27일,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우리는 한순간 얼어붙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날,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 어떤 정치인의 차마 입에 담고 떠올릴 수 없는 언사는 마치 차갑고 날카로운 파편처럼 수많은 이의 가슴에 박혔고, 특히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 정치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이 아니라, 거칠고 무자비한 칼이 될 수도 있음을 목도하며 깊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꼈습니다.이 사건은 단순한 말실수의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난 세월 동안 정치의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맞이하는 오늘날의 세상은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극단의 선명성을 요구하곤 합니다. 날카로운 선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높은 채도의 뚜렷한 색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고 나의 진정성은 평가절하 되기 일쑤입니다. 그런 와중에 가끔씩 마주하는 안개 자욱한 아침은 무채색의 향기를 뿜어내며 모호함 속으로 나를 초대하고 라르고의 발걸음을 허락하는 마법 같은 휴식을 줍니다.사진에 있어 ‘안개’는 매우 유용한 표현의 도구이자 소재입니다. 안개는 빛의 강한 대비를 줄여주는 자연 필터 역할을 함으로써 콘트라스트의 감
"앞으로 AI가 바꾸어 갈 세상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자유로운 존재로 남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설정한 경로 위를 걷는 데이터의 그림자에 불과하게 될 것인가?"디지털 세계가 우리를 편리하게 해줄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생각과 판단을 자신의 외부에 있는 기계와 알고리즘에 맡기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편리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부터 잦은 불편을 감수하며 사유하고, 갈등하며 성장해온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보도된 AI의 돌발행동들은 인간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와의 관계 속에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하이데거는 빛보다는 그림자 속에 존재의 진실이 감춰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상 너머에 숨겨진 본질을 들추어내려는 철학자였고, 존재의 은닉성과 드러남의 경계에서 세계를 해석했습니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빛’은 단순한 조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탈은폐(Aletheia)’의 상징입니다. 빛이 드리운다는 것은 어떤 존재가 은폐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사건이며, 반대로 그림자는 존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음을 뜻합
뜨거운 불길과 연기 속에서 그 아이들만 있었다.지난 7월 2일,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두 자매가 불길에 휩싸여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8살과 6살이었습니다. 에어컨에서 연결된 멀티탭에서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 이 사고는, 부모가 야간 식당 일을 하러 외출한 사이 발생했습니다.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이 사고 발생 9일전에도 부산진구에서 부모가 새벽에 청소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역시 스프링클러가 없는 아파트에서 10살과 7살 자매가 화재로 숨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에도, 인천 서구의
민족의 심장을 울렸던 78년 만의 귀향2021년 8월 15일, 제76주년 광복절은 단순한 국경일이 아니었습니다. 새 하늘이 열리면서 땅을 박차고 올라온 고목의 뿌리처럼 다시 민족의 혼이 깨어난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날, 머나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시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입니다.1895년부터 시작된 그의 의병 투쟁은 대한의 숨결을 빼앗긴 땅 속에 심는 일이었습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는 일본군을 유인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같은 해 청산리 대첩에서는 민
종명 형님, 안녕하십니까?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제 마음속엔 분단 이후 70여년이 넘는 세월의 절망감과,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오릅니다.오늘은 6월 25일, 형님과 부모님께서 생이별하신 그날이 떠오르게 하는 날입니다. 저는 형님의 막내 동생입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님과 아버님·어머님의 발걸음은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방향이 되어버렸고, 그 찢겨진 세월의 틈 속에서 저는 태어났습니다.해방 이후 꿈 많은 청춘들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남하하던 시기,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다시 ‘죽음’이 불러낸 질문.“학교는 왜 이토록 고통의 공간이 되었는가”지난 6월 21일 새벽,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세 명이 나란히 몸을 던졌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여학생들. 유서에는 “학업과 진로에 대한 부담”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짧고 가벼운 종이 몇 장이 이 사회가 그들에게 가한 무게를 역설적으로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생명 셋이 손을 맞잡고 죽음을 택해야 했던 현실. 우리는 더 이상 이 죽음을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교육의 실패이고, 사회의 실패이며, 공동체 전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