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컨퍼런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는 매일같이 회의를 열면서도 정작 회의(懷疑)는 하지 않았다. 왜 꼭 이 순서여야 하는지, 왜 발표자와 청중이 나뉘어야 하는지, 왜 시간표에 갇혀야 하는지. 언컨퍼런스(Unconference)라는 단어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부정의 접두사 'un-'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기존을 뒤집는다(un-conference)는 이 조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당연시해온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고백한다. 그것을 전복하려면 아예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컨퍼런스의 원칙은 급진적이리만치
결혼을 하고 새 둥지를 텄던 이 동네에서, 우리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며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이 지역에서 미력하게나마 이곳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동네 공원에서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곳이 단순히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그 친구들이 함께 성장할 공동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다. 예전엔 출퇴근 편의성과 생활 인프라를 주로 봤다면, 지금은 놀이터의 안전성, 미세먼지 농도, 교육 환경, 그리고 이 지역이
서점 매대를 보면 계절을 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이 나왔다. 어김없이 가을이 온 것이다. 이 책이 서점에 꽂히면 우리는 비로소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올 내일을 준비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질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심이 된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 책이 있다는 사실이.『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키워드의 적중률을 따지고, 누군가는 분석의 깊이를 논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들의 '꾸준함'에 박수를
키즈카페 전체를 대관한 예약 시간이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어났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연장한 거였다. 시간뿐 아니라 호칭도 바뀌었다. 중학교 때부터 이름으로 불러온 친구들이 갑자기 ‘삼촌’이 되어버린 오후였다. 우리는 한때 힙합 패션에 푹 빠져 겉멋에 취해있던 못 말리는 중딩들이었다. 청바지를 헐렁하게 입고, 뭔가 멋져 보이려고 애썼던 그런 철부지들. 그런 우리가 이제 각자의 아이 손을 잡고 키즈카페에 모여 있다니. 총 6명의 모임. 아빠 셋에 아이 셋, 그리고 추가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또 다른 친구 K도 합류했다
외교관은 흔히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는 양복 입은 군인’으로 표현되곤 한다. 총알 대신 말로, 총검 대신 펜으로 싸우는 전사들 말이다. 민동석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펴낸 『나는 대한민국 외교관입니다』는 바로 그런 양복 입은 군인의 조언이 담긴 책이다. 1979년 외무부에 입부한 저자는 외무고시 13회 출신이다. 현 조현 외교부 장관, 직전 조태열 전 장관, 위성락 현 국가안보실장이 모두 외시 13회다. 대중적으로도 익히 알려진 고승덕 변호사 역시 외시 13회로, 당시 외시 차석을 했다. 이들이 활동했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는
한국일보 기자 김희원의 『오염된 정의』를 읽으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시대 대부분의 비판서들이 진영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한쪽 편만 두드리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저자는 “숱한 정치인을 가차없이 베는 글들”(이희정 《미디어오늘》 대표의 말. 이희정 대표도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다)을 쓰되, 그 칼날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2부 ‘왜 그렇게들 떳떳한가’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시선은 예리하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이들이 보이는 뻔뻔함을 해부하면서도, 그것이 특정 정치 색깔의 전유물이 아님
제목이 신선했다. 눈길이 갔다. 부제도 인상적이다.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란다. 하현 작가의 를 펼쳤다.사실 난 실외형 인간이고, MBTI의 렌즈로 나라는 인간을 독해하면, 난 무조건 E다. 외향 그 자체다. 그럼에도 내 주위의 많은 실내형 인간에 대한 이해도 증진 차원에서라도 이 책을 짚었다. 또 인간은 누구나 양가적인 심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극 E인 나도 때로는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을 누릴 때가 있기도 하고.하현 작가는 말한다. “약속이 취
유치원생 아이와의 대화는 늘 즐겁다. 즐거움을 넘어 경이롭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온 가족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철학적 성찰까지 안겨준다. 우리 아기천사도 그렇다.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다가도, 레고를 맞추다가도, 그림책을 읽다가도 문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쏟아낸다. 요즘 그 호기심의 초점은 ‘직업’이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어른들을 보며 “이 아저씨는 누구야?”라고 묻는다. 경찰관, 소방관, 의사, 선생님. 아이의 눈에는 모든 어른이 신기하고 멋져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슬쩍 물어봤다. “우리 아
유튜브 영상을 통해 꾸준히 접해온 최연혁 교수의 통찰력 있는 분석에 익숙한 나에게, 최근 읽게 된 그의 책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는 색다른 여운을 남겼다. 유튜브 속 모습을 통해 그의 명쾌한 분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책 속에 펼쳐진 북유럽 정치 문화의 풍경은 나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뒤흔들었다. 최연혁 교수는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으로서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은 단순한 성공 매뉴얼이 아닌, 일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책이다. SK와 KT의 최고위 임원을 역임하고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일터에서 경험을 쌓은 저자는 ‘일’이라는 보편적 활동을 ‘격(格)’이라는 차원에서 재해석한다. “두드려야 열린다”라는 실천적 원칙은 직장인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외국계 회사의 지사장 사례를 공유하며, 저자는 전문지식보다 때로는 행동과 자세가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특히 조직 내에서 단순히 리더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을 넘어
최근 어린이집 수료식이 있었다. 아이는 수료증과 함께 특별한 상장도 함께 받아왔다. 아빠인 필자는 못 받아온 큰 상이었다. 바로 ‘바른말 고운말상’이다. 이름이 불리면서 상을 받으러 앞으로 나갔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대견하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위 어린이는 평소 바른말 고운말을 잘 사용하여 친구들에게 모범을 보였기에 이 상을 주어 칭찬합니다.” 상장의 문구를 보니,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어린이집에 처음 아이를 맡겼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어린이집을 수료하고 유치원에 가게 되다니. 또 아이가 말을 잘한다는 소리
. 흥미로운 제목이다. 소설가의 작문법, 기자의 작문법, 평론가의 작문법이 아니다. 방점은 ‘작문법’이 아니라 ‘일터’에 찍혀 있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은 소설가, 기자, 평론가의 위치보다는 직장인에 가깝다. (기자도 어떤 매체에 속한 직장인이지만 기사를 쓰는 업을 영위한다는 특수성이 있다.)이 책의 저자 문현웅 작가는 말한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당신은 물론, 당신의 글에도 흥미가 없다.” 너무 냉정하게 말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면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바쁘고, 여유가 없다. 문 작가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보정 앱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필수가 되었다. 얼굴은 섬세하게 조정되고, 빛과 색감은 원하는 대로 변조된다. 결과물은 눈부시도록 완벽하다. 편집실이 따로 없다. 그런데 사진 속 그 모습이 정말 나일까? 아니면 보정을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나의 이미지일까?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관계를 맺으면서도 끊임없이 기억을 보정한다. 희미해지는 것과 선명해지는 것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싫었던 순간은 점차 흐려지고, 좋았던 기억만 남는다. 때론 한 번의 불쾌한 경험이 그 사람
칼바람이 매섭다. 혼자 차를 타고 외할머니가 계신 그곳으로 갔다. 천주교 묘원이다. 아이 아빠가 되고, 회사에서는 팀장 호칭을 듣게 되면서 이제 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할머니 앞에서 난 언제나 ‘강세이(강아지의 경상도 방언, 손주를 귀엽게 이르는 말)’다. 나의 할머니는 늘 집안을 칼같이 정리정돈해 놓으시는, 매사에 무척이나 깔끔하신 분이었다. 세 살, 네 살, 다섯 살의 내가 당신 집에 다녀가면 온 집에 개구쟁이의 흔적이 남았을 터. 할머니는 특히 안방 거울에 묻은 나의 손자국을 한동안 지우지 않으셨다. 지우지 못하신
우연히 소설을 한 권 접했다. 무엇을 읽기도 쓰기도 어려운 요즘, 찬찬히 그러면서도 편안히 읽어간 책이다. 강진영 작가의 이다.출판사 이름부터 눈길을 끌었던 기묘한 책이다. 영어(yangmal gihoek)로 표기되어 있어서 무슨 뜻인가 했다. 한글로 변환된 것을 보니 양말기획이었다. 출판사를 항시 체크하는 습벽이 있는 필자로서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은 네 개의 독립된 이야기(침공, 거스러미와 마시멜로, 한세연쓰기, 엄마가 루앙프라방에 있다)로 구성되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는 글이라서, 하나하나 소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탄 젊은 한 쌍.최근 휴대전화 속 사진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다. 뒤통수만 봐도 앳된 느낌이 든다. 처제가 찍은 나와 아내의 뒷모습이다. 뒷모습인데 신나 보인다는 처제의 코멘트가 재미있다.결혼식을 잘 마치고, 그날 하루도 쉬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다. 젊은 부부는 체력도 참 좋았다. 1시에 시작된 결혼식. 친지들과 식사까지 다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지방에서 온 친척들은 부모님들과 자리를 더 가졌다. 나와 아내는 빨리 떠나고 싶었다.결혼식은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작은 실수도 없이
2056년 10월 4일. 아내와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산책을 나선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20대에 처음 만나 연애를 했고, 30대에 결혼을 한 우리. 시간이 이렇게 흘렀건만 그녀와 나누는 대화는 늘 즐겁다. 아직도 난 그녀에게 아이 같은 장난을 치고, 그녀는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준다.요즘 손주 영상을 보는 게 낙이다. 30여년 전 부모님과 처가 어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아들 사진이 가득했다. 우리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가족 단톡방에 수시로 올렸다.
요즘의 ‘나’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핵심적인 키워드는 ‘아기 아빠’다. 아빠가 되기 전에는 나의 전공이나 소속 회사, 취미, 앞으로의 계획 등이 나를 규정했다면, 지금은 아빠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두드러진다.어제도 퇴근 후 비대면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한 시간짜리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살짝 방심하고 있으면 아이의 얼굴이 화면에 잡힌다. 나도 웃고 사람들도 웃는다. 채팅창에는 귀엽다는 반응과 아빠와 붕어빵이라는 코멘트가 올라온다. 음소거 상태일 때는 괜찮은데, 마침 내가 어떤 의견을 내고 있을 때, 즉 마이크를 켜놓았을
아이 아빠인 필자는 키카(키즈 카페)에 자주 간다. 키카만 따로 있는 곳도 있고, 대형 복합쇼핑몰에 키카가 입점한 곳도 있다. 아이는 유독 아빠랑 같이 키카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 손을 잡고 키카에 입성하면, 아내는 두 시간 동안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한다. 물론 반대로 가끔은 아내가 아이 손을 잡고 키카에 들어간다. 그럴 때 필자는 휴식도 취하고, 서점에도 간다. 완벽한 협업 체제다. 키카도 사실 종류가 많다. 최근 들어서는 1년 전만 해도 가기 힘들었던, 난도가 좀 더 높은 액티비티 시설이 많은 키카에 자주 간다. 형들이나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은 아니죠~!” 살면서 아마 수백 번은 봤을 문구다. 늘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하긴 화장실에서 뭐 대단한 생각씩이나 할 필요가 있겠는가. 거울 한 번 보고, 손 깨끗이 씻고 나가면 될 일이다. 근데 어느 주말, 화장실에서 ‘눈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소변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로 ‘한걸음 가까이’ 가야 하는 것도 옳다. 한데 남자는 진짜 눈물을 흘리면 안 되나?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질문. 이 생경한 자문에 말문이 막혔다. 슬플 때, 감동을 받았을 때, 아플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