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학원 안 가는 거지요. 이 거지 같은 학원!”순둥순둥한 녀석 입에서 나온 ‘거지 같은’은 강한 감정 표현이었다. 유럽 여행 가서 좋은 게 아니라, 학원 안 가서 좋다는 것이다. 녀석은 개운하게 웃었다.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1n박으로 가는 가족 유럽 여행 vs 학교, 학원 안 가고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1n일’. 후자의 승률이 높았다. 예상 못한 답은 아니었다. 너희에겐 시간 낭비할 권력이 없다.나는 유럽 여행의 가치를 모른다.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쌓는다는 여행의 가치
부모들은 다 자란 자식들을 향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를 부른다. - 너에게 뺏겨 버렸던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 너는 언제까지나 나만의 나의 연인이라 믿어왔던 내 생각이 틀리고 말었어.자식들은 부모들을 향해 사자 보이스의 을 부른다. 정몽주보다 꼬장꼬장하게. - You gave me your heart, now I'm here for your soul. I'm thе only one who'll love your sins. Feel the way my voicе gets underneath
숙제에 치여 사는 10대가 별로 불쌍하지 않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어렸을 때도, 지금도, 공부하지 않는 10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려서 어쩌자는 건가.그런데 상위권 학생들만큼은 ‘나 때’보다 더 치열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자정을 넘겨가며 공부한 적이 없었다. 대학을 향한 레일이 이미 깔려 있었고, 학생은 닥치고 달리기만 하면 됐다. 정답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성적이 정했다. 살아왔던 날과 살아갈 날을 맞대보니, ‘정답’은 거대한 폭력이다. 앞으로의 삶은 정답을 향한 투쟁이 될 것 같아, 조금
업데이트 전, 카카오는 이미 비호감 기업이었다. 내게 카카오는 라이언과 춘식이의 탈을 쓰고 골목길에서 푼돈을 착실하게 걷어 가는 전국구 조폭 이미지였다. 새로운 부를 창출한 게 아니라 플랫폼 하나로 기존의 부를 강탈해 간 것이다. 배달앱 시장이 ‘외자 지배 구조’로 재편될 때 카카오가 선전했다면 ‘우리나라를 지켜낸 토종 플랫폼’ 이미지라도 챙겼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외자 지배 구조의 플레이어인 쿠팡이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해 배달앱 시장에 자리를 잡는 동안, 카카오는 어영부영 물러섰다. 만만한 영세상인의 돈만 문어발로 빨아들이는
드디어 나도 종교가 생겼다. 무교에, 전통문화로서의 불교 친화적 종교 감각만 갖고 살던 내겐 특별한 일이었다. 종교는 내게 내린 처방이었다. 나는 자의식 과잉으로 오만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는, 나 스스로 나인 자인데, 나 혼자만 레벨업하지 못해서 타인이 지옥이었다. 냉소와 혐오, 짜증은 생활 감각이 되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꽃 같은 소리를 경멸했다. 2+2=4처럼, 타인은 내 이물질이고, 신은 없었다.내게 종교는 미개함의 잔여였다. 합리적 이성으로 세계가 탈주술화되었음에도 오래된 상호주관적 상상물에서 벗어나지 못하
2030 남성 극우화의 시작은 2018년, 미투 때였다. 나는 2030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에 진절머리났었다. 극단적 온라인 페미니즘, 워마드와 메갈리아는 일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소한 일베는 ‘인터넷 쓰레기통’이라는 사회적 합의라도 있었지만,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의 피해자라는 도덕적 우위를 선점했다. 그들의 일베 수준의 남성 조롱과 혐오는, 진보 진영의 묵인 하에 정당했다. 눈물이 곧 증거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남성은 가해자로 확정되었다. 누려본 적 없는 가부장 권력의 책임을 내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
공부방에 주워온 인형들이 꽤 있다. 세탁기에 들어가지도 않는 고릴라, 세탁기에 겨우 들어간 시바견, 20리터 쓰레기봉투에 곱게 들어 있던 오리에, 무려 라이언까지, 멀쩡한데도 버려져 있었다. 쓸모가 남은 것들이 버려진 것은, 내 이력서가 ‘쓸모없음’으로 낙인되던 때가 떠올라 인형들에 손이 갔다. 당시 내가 멀쩡했듯, 인형들도 멀쩡했다. 인형을 씻기고 말린 뒤 공부방에 두니 아이들이 좋아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유효한데, 아이들은 눈알을 돌리거나 때리며 상호작용했고, 감성적인 아이들은 안고 있기도 했다. 버려진 것들의 쓸모를 찾아준
14억 원짜리 아파트에서 직선 거리 200m쯤 떨어진 곳, 상가 월세는 20만 원이었다. 그 정도도 비싸지 않나 싶은 퇴락한 재래시장이었다. 시장의 중심은 비었고, 인도에 접한 가장자리 가게만 살아 남았다. 천장 가림막이 찢어져 있어서 한낮에도 을씨년스러웠다.200m 거리의 그 아파트를 팔면 이곳 상가 583년치 월세가 나왔다. 2025년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한글 반포 1년 전이고, 반포 자이는 35.5억 원 ~ 95억 원이다.현실은 더 잔인하다. 14억 원을 은행에 맡겨 두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세후 월 300만 원쯤의 이자소득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시험 직후의 대학 도서관이다. 인근 대학 시험이 끝나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스케줄을 짜둔다. 최적화된 냉온시스템에 6인용 테이블을 독점할 수 있는 여유가 고요히 달달하다.사람 많은 도서관은 딱, 질색이다. 사람 중에 학생 아닌 '것들'이 꼭 끼어 있다. 저출산으로 이 대학 입결도 점점 낮아지는 모양이다. 시험 기간이면 아무튼 학생인 '것들'까지 도서관으로 기어들어 온다. 공부하지 않던 '것들'이 공부하는 척하니 도서관 생태가 흐려진다. 멍멍, 월월, 왕왕, 짖는 '것들'이 넘쳐난다.공부 안 하면 망하는 건
기억 나니?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누군가가 단어만 말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똥’을 들은 미취학 아동처럼 격렬하게 웃어댔다. 들끓는 웃음 속에서 나만 멀뚱멀뚱했다. 알고 보니,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세 발 달린 파란 상어였다. 그날 내가 느낀 건, 밈에서 탈락한 세대 차이가 아니었다. 똥만도 못한 시대 유감이었다. 똥은 무게와 악취를 가진 실체(기의)를 바탕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는 실체 없는 껍데기(기표)만으로 작동했다. 저 무구한 웃음은 도파민 오작동의 증상이었다. 혹은 무의미한 성과
스승의 날에 받는 선물은 감사하지만, 민망하다. 강사-수강생, 선생-학생, 스승-제자로 분류된 내 언어 감각에 위배된다. 나는 스승이 아니다. 사전은 스승을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인도’에 부합하려면 인생이 숙성될 시간이 필요하다. 스승은 훗날 학생에 의해 사후적으로 승인받을 따름이므로 10대와 20대에게 스승은 존재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내 학생을 감히 제자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강사다. 하지만 학생들과 반말을 섞는 거리에서, 스스로를 조금 욕심내어 ‘선생’이라 자청한다. 뻔뻔하지만, 언젠가 ‘스승’
한식의 세계화가 과학을 설득했다. 과일이지만 채소로 분류된 토마토처럼, 매운맛은 과학적으로 통각이지만 어차피 입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문화적으로 미각으로 분류되었다. 매운맛의 미각 수용체는 항문에도 있다. 우리가 매운 걸 먹을 때, 몸의 입구와 출구에서 두 번 맛보는 셈이다. 변기 위에서 맛보는 화끈한 복습, ‘맵다’가 전세계 화장실에 펼쳐진다.‘맵다’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언어의 위상이 다르다. hot이 매움과 뜨거움을 구분하지 못한 건 음식 문화 때문이라고 추측했지만, 매운 음식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맵다’는 드물었다. 멕시
어린 시절, 내게 ‘초(超)’는 장래희망에 버금가는 막연하고 경이로운 단어였다. 초합금 로봇, 초능력 전사, ‘초’를 가지면 지구라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어린이의 당위는 『드래곤볼』의 초사이어인에서 명멸했다. 초사이어인은 사이어인의 한계를 넘어서고 극복하는 전설이었다. 머리칼이 금빛으로 빛나는 우주 최강자가 되는 낭만에, 내 세대 남학생들은 집단적으로 전율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세계가 우리에게 초사이어인이 되라고 요청하더라도, 초사이어인은 월급 방위대로 한정된다.‘초’는 일상화 되어 갔다. 초과근무, 초경쟁, 초압박이 익숙해졌
G-Dragon 3집 앨범을 샀다. 2009년 발매된 서태지 심포니 이후 16년 만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해보려고 마음먹었다.언젠가부터 음악 자체를 듣지 않았다. 서태지 심포니도 기존 노래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것이었으니 내 음악은 20여 년 전에 멈춰 있었다. 음악은 공공장소에서 누군가가 시끄럽게 굴 때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노으즈캔슬링이었다. 타인의 통화 소리보다 내가 좋아하는 전자기타음 위의 고함 소리가 고요했다.소음을 차단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삶의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되었다. 시끄러운 것, 복잡한 것, 번잡한 것, 과장
세상을 구독하고 있다. 삶이 고독해지고 있다.산 지 십 년 넘은 후드 티셔츠를 버릴 때, 산 지 사십 년 넘은 나는 망설였다. 특별할 것 없는 싸구려였다. 그러나 버리기로 마음먹자 처음 샀던 날과 여기저기 흩어진 내 사진 속 흔적과 옷장에 걸려 있는 모습들이 인생 1/4로 닥쳐왔다. 손에 들고 있던 천 조각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감각이 온몸에 밀려왔다. 네 안에 나 있었고, 내 안에 너 있었다. 우리의 상보성이 만든 ‘망설임’을 읽은 날, 로크를 생각했다.철학자 존 로크는 신체와 노동이 결합해 생산해낸 것이야말로 개인의 소유라고
‘이모님’은 여성 차별 표현이다. 이모님이라고 불릴 때 직업의 객관적 의미는 사라지고, 사적 영역의 뒤치닥거리 전문가만 남는다. 뉴스에서조차 ‘필리핀 이모님’이라고 지칭하고, 최근에 이슈가 된 [흑백요리사]에서도 한식을 주력으로 하는 여성 요리사는 쉐프라기보다는 고급이모님에 가까웠다.이모님은 ‘가정부’나 ‘식당 아줌마’에 함의된 비하적 뉘앙스를 친근함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친족 용어 ‘이모’로는 직업적 독립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모님은 엄마의 역할이 직업 시장에 투영된 피사체로 국한된다.나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나이 든 여성 직원을
1월 남자 아이돌 브랜드 평판 1위는 차은우였다. 역시, 잘생긴 게 최고였다.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GD가 7년 만에 컴백해 자신의 건재함을 세계 단위로 알리며 한국 10대에게로 외연을 넓혔어도 2위였다. 차고 넘치는 재능과 그것을 연마한 노력도 잘생김 앞에서 힘을 못 쓰는 것이 탄로난 것이었다. 이 시기 차은우의 활동은 ‘잘생김’ 그뿐이었다. 노력의 시대가 끝난다면, 그 시작은 2025년 1월이 아닌가 싶었다.개인적으로 노력의 무용성을 콘텐츠로 접한 것은 웹툰 [노블레스]가 처음이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세계관 강자였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극한값이었다.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지만, 지향점에 수렴할 뿐 영원히 닿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의 순간,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갉아 먹는다. 시민의 무지 때문이다. 무지할 자유가 보장되고, 무지한 자의 의견도 평등한 무게를 지닌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 무지를 견디며 헐떡댄다.계엄의 순간, 좌우를 초월한 불의가 명징했으므로 윤석열 처벌 반대 논리를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옳고 당신들이 틀려, 나는 내가 무서웠다. 폭력은 자신이 정의라는 확신을 먹고 자랐다. 내가 무서운 만큼 당신들도 무서웠다
강자를 응원하는 민망함, [최강야구]를 시청할 때 목에 걸린 가시다. 나도 언더독으로서 사회라는 탑독에게 승률 2할도 안 되는 게임을 해온 것 같은데, 꾸역꾸역 살아남아 패배감에 길들여지며 별 수 없이 살아지는데, 나는 나보다 어린 언더독들의 패배를 바랐다. 골수 롯데 팬으로서 이대호의 팀은 승리해야 했다.[최강야구]는 은퇴한 야구 선수들이 팀을 이뤄 아마추어 팀들과 야구 시합하는 TV 예능이다. 정점에서 내려온 노장들과 정점을 향해 질주하는 영건들이 싸우는 설정은 흥미로웠고,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선수들을 다시
12월 7일, 탄핵 부결된 날 저녁, 나는 대구 동성로에 있었다. 시위 참여를 명분으로 친구들을 만날까 하다가 공무원 녀석은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껄끄러워질 것 같아서 혼자 조용히 갔다. 시위는 재미없었다. 시위대 주변에 서서 익명의 1인으로 30분쯤 자리를 채우다가 돌아왔다. 내가 시대에서 밀려 났음을 확인한 사태가 부끄럽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역동했고, 역동의 중심에는 어린 여성이 있었다.재미없음의 정체는 ‘낯섦’이었다. ‘바위처럼’ 대신 ‘아파트’가 합창되었다. 민중가요를 좋아한 적 없지만, 민중가요가 만드는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