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김철웅 칼럼니스트] 꽤 오래전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일등서기관 L을 만나 술 마시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러시아의 마피아 등 범죄 급증이 심각한 문제 아니냐고 물었다.그가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걱정된다... 하지만 미국만큼 심각한 건 아니다. 미국을 봐라.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벌어지고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 미국 아닌 나라,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 브레이비크가 총기를 난사해 모두 77명을 숨지게 한 테러사건(2011년)도 발생
[오피니언타임스= 김철웅 칼럼니스트] 문화에 있어 끊임없이 편을 가르려는 경향이 존재해온 건 사실이다.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 ‘유행의 시대(원제: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 2011)’에서 이렇게 썼다. “선천적으로 ‘고급문화’라는 것, 엘리트 취향이라는 것이 있었고, 전형적인 중류층의 평범하거나 ‘속물적인’ 취향과 하류층이 열광하는 ‘천박한’ 취향이 존재했다. 그것들을 뒤섞는다는 것은 물과 불을 섞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은 진공을 꺼리지만, 문화는 혼합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오피니언타임스= 김철웅 칼럼니스트] 오래 전 필자는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를 번역·출간한 적이 있다. 속표지의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는 특이한 제사(題辭)가 지금도 기억난다. 여기에 소설의 주제가 압축돼 있다. 작가는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즉 세속적인 윌콕스가(家)와 이상을 추구하는 슐레겔가 남녀의 갈등과 화해를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는 스토리가 ‘대립으로부터 연결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다.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건 최근 한 기사를 읽으면서다.
[오피니언타임스= 김철웅 칼럼니스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뜬금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를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첫째는 문제 제기 방식의 가벼움이다. 이 대표는 라디오와 TV에 나와 이 주장을 폈다. CBS 라디오에서는 “보수 쪽 진영은 원래 작은 정부론을 다룬다. 현재 정부 부처가 17~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많다. 여성가족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자”고 말했다. 앞서 SBS 인터뷰에서도 여가부 폐지 목소리를 냈다. 자신이 보기에 성과가 미흡하다고 아예 없애버리자
[오피니언타임스= 김철웅 칼럼니스트] 며칠 전 신문에서 ‘호신용 페퍼스프레이’란 칼럼을 읽었다. 뉴욕에 사는 한국여성이 그런 제목의 글을 쓴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미국에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아시안 혐오범죄 때문이다.필자는 “뉴욕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주에 사는 아시안 친구들은 테이저건이나 권총에 보디캠까지 장착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안심이라며 정보교류 중”이라고 했다. 그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 피부에 와 닿는다. 미국 내 아시아계는 사는 게 전보다 불안해졌다. 지난해 혐오범죄는 7% 줄었지만 아시안에 대해서만 150% 증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김철웅] 한국의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이달 초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민등록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2019년(5184만9861명)에 비해 2만838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인구 감소는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인구증가율 마이너스, 원인은 무엇인가.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는 우선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성장기인 1970년대 일상적으로 접했던 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독려 구호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심각한 저출산 기조가 슬슬 문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김철웅] ‘울분 사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울분 하면 떠오르는 소설부터 소개하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이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건대,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횡설수설로 일관한다. 주인공 ‘나’는 증오심에 시달리며 삶은 우울하고 혼란하고 고독했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혐오는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이 상태로 이십 년간 지하에 틀어박혀 있다. 그 바탕에 깔린 정서가 까닭 모를 울분이다
[논객칼럼=김철웅]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진행 중인 의사 파업 같이 파장이 엄청난 사태를 피하기 위해 미리 ‘갈등영향분석’했더라면 어땠을까. 갈등영향분석이란 말이 생소할 것이다. 비교적 덜 생소한 환경영향평가를 떠올리면 된다. 환경영향평가는 어떤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로운 환경영향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환경영향평가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갈등영향분석도 마찬가지다. 어떤 공공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그것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분석하는 것이
[논객칼럼=김철웅] 미국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30)는 특이한 정치인이다. 20대이던 2018년 11월 중간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뉴욕주 제14선거구에서 당선돼 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이 됐다. 당내 경선에서 10선 관록의 조셉 크롤리를 꺾는 큰 이변을 낳더니 본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도 가볍게 물리쳤다. 푸에르토리코계 부모 밑에서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보스턴대에서 국제관계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19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생활고를 겪으며 출마 전까지 바텐더·웨이트리스 생활을 했다. 선거전 메시지는 단순했다
[논객칼럼=김철웅] 오지 여행가,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책 에서 이렇게 말했다.“외국에서 낯선 사람끼리 만나면 맨 처음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름일까? 천만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다. 국제회의에서 모르는 참가자들끼리 만날 때에도 명찰에 써 있는 국적이 이름보다 훨씬 궁금하다.”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를 확인시키는 첫 번째 창은 한비야가 아니라 ‘한국인’이었다고 말한다. 국가와 민족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서 이런 얘기는 다소 뜻밖이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을까. 우선 분단국가다. 한
[논객칼럼=김철웅] 오보(誤報)도 천태만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가 작년 한 해 동안 신문에서 어떤 오보가 있었는지를 조사해봤다. 오보의 기준은 정정보도를 뜻하는 ‘바로잡습니다’ 사고(社告)의 대상이 됐는지였다. 이는 해당 언론사가 스스로 기사내용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고친다는 뜻이다. ㄱ신문은 2019년 1월 7일자 사설에서 작지만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다. 한·일 간 레이더 공방으로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면서 “한국 쪽에서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照射)한 게 맞는다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재발을 약속하면 끝날 사안이
[논객칼럼=김철웅] 며칠 전 필자는 처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가벼운 논쟁을 벌였다. 지난달 말 경기도 의회가 주한미군 부대 주변 ‘기지촌 여성’의 생활안정 등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한 것을 두고서였다. 나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조례가 제정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처는 그런 조례가 나온 것을 무분별한 복지 확대로 규정하고, 그런 곳보다 더 절실한 곳에 써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해석하자면 ‘소나 개나 복지 혜택에 눈독을 들이는데, 그러면 안된다’는 거였다. 처의 정치 성향은 이른바 ‘대깨문’은 아니지만 문빠
[논객칼럼=김철웅] 교육자 이오덕은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젊은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잘 보존하고 있었다. 그 편지들을 책으로 펴낸 게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2003)이다. 세상에 이렇게 빛나는 우정의 편지가 또 있을까. “이오덕: 어느 골짜기 양지바른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라 아침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권정생: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살아도, 나는 종달
[논객칼럼=김철웅]세상이 온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다. 덕분에 다른 소식들, 특히 총선을 두 달 남겨둔 정치권 뉴스는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코로나 바이러스 탓만도 아니다. 동아일보는 며칠 전 ‘원내정당 10개…비전·가치 대신 정략·꼼수 판치는 후진 정치’란 사설에서 “원내정당의 이합집산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념대결을 넘어서는 정책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정치판이지만 의미 있고 신선한 뉴스도 가끔은 있다. 그런 것으로 필자는 최고임금제 도입에 관한 뉴스를 꼽고 싶다
[논객칼럼] 오래 전 필자는 구 동독에 가서 환경오염 실태를 현지 취재한 적이 있다. 동독에 주둔해온 구 소련군 기지가 대상이었다. 기사는 ‘군사폐기물 오염, 중병 앓는 구동독’이란 제목으로 1992년 4월 14일자 신문에 실렸다. 당시 르포 일부를 소개한다.“(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도인 포츠담 근교의 달고프 소련군 기지는 문자 그대로 폐허였다. 이미 소련군이 철수해 버린 이 기지의 곳곳에는 폐윤활유가 흘러나오는 드럼통들을 비롯해 폐타이어, 폐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환경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과거 ‘
[논객칼럼=김철웅] 알다시피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이다. 당 강령에도 명시돼 있다. 강령에는 “산업화의 주역인 보수정당으로서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한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변화하고 개혁하는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한다”고 돼 있다.보수란 무엇인가.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도덕과 전통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이다. 변화를 무조건 거부한다는 뜻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수구(守舊)라 한다. 한국당 강령도 이 점을 의식한 듯하다. 자신을 보수정당이라고 규정하
[논객칼럼=김철웅] 불평등과 빈곤에 관한 뉴스가 일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쓴 을 보자. “브룩클린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배심원단이 소집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저분한 방에는 부서진 의자, 형편없는 침대, 빈 위스키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에는 죽은 아기의 엄마인 소녀가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있었고, 의자에는 아기 아빠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경찰관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우리 당의 기본 정치철학이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이해찬 대표)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고도 절실한 명제다.”(박광온 최고위원)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연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참석자들은 ‘차질 없는 지방분권 추진’ 의지를 다졌다. 민주당 정부만 그런 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고심해 왔다. 그러나 그저 말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말을 구두선(口頭禪)이라 한다.
[논객칼럼=김철웅] 번지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걸 ‘역대급’으로 키울 수 없을까. 일본 측 반응을 접하면 특히 그렇다.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 불매운동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며 이번 불매운동도 실패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실제로 지금까지 4차례 불매운동이 있었으나 흐지부지 끝났으며 오히려 시장 점유율이 오른 품목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지”란 마음이 절로 든다.그러나 이 말에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불매운동을 ‘뭘 모르고 저지르는’ 반일 민족감정의 표출
[논객칼럼=김철웅] 얼마 전 중국에 여행하고 온 지인한테 들은 말이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분위기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영 중국중앙(CC)TV는 아침 7시 뉴스가 시작되면 곧바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방영한다. ‘일어나라/ 노예 되기 싫은 사람들아/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 장성을 쌓자…’방송 뉴스를 이런 전투적 국가로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바로 지난달부터였다. 도화선이 된 것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다.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고 중국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華爲)에 대해 미국이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