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서석화]죽전에 온 후론 일몰을 자주 본다. 그 시간에 탄천을 걷는 게 습관이 된 후에 얻어진 선물이다. 물이 흐르는 길 양쪽으로 길게 군락을 이루며 서 있는 버드나무와, 싱싱한 물살이 가장 조용해지는 시간.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처럼 자태 고운 두루미의 비행도 멈추고, 천연덕스럽게 떠다니던 청둥오리 무리도 물 위로 늘어진 버드나무 이파리들 속으로 숨는 시간. 이름은 모르지만 어른 종아리 굵기와 길이는 거뜬히 될 것 같은 물고기들도 모래를 들추며 물살 아래로 낮게 가라앉는 시간. 그리고 개나리가 물꼬를 튼 봄부터 하늘이
[논객칼럼=서석화]이런 조우! 티끌만큼의 암시도, 갑자기 떠올라 휘청거렸던 1초도 없었는데, 그녀가 불쑥 떠올랐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눈에 뜨인 낡은 시집 때문이었다. 초록색 하드보드지 표지엔 ‘릴케 시집’이란 제목이 금박으로 쓰여 있다. 종이가 하도 누렇게 변해 발행일을 보니 거슬러 계산하기도 힘든 1974년이다. 정가 400원. 1974년과 400원이란 숫자가 인식되자 아주 잠깐 숨이 멎는 것 같다.장미와 불안과 고독, 사랑과 두이노 성과 파도와 천사를 그녀는 말했었다. 릴케라는 이름은 루 살로메와, 러시아와, 절대자와 함께,
[논객칼럼=서석화] “당신들은... 죽을 만큼 서로 사랑했거나,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거나...”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쳐다볼 때는 숨도 안 쉬는 듯 얕은 미동도 없던 그녀가, 그래서 내 말에 받은 충격이 너무 컸나를 걱정하게 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한참을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당겼다 밀었다 하더니 소리 내어 숨을 내쉬었다. 그 숨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괜한 말을 했다는 자책이 그녀의 눈빛에 가려졌다.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고 안정돼 보이는 눈빛이었다. 나
[논객칼럼=서석화] 균열이었다. 아니다. 그것으론 부족하다. 분명히 틈이 생기는 정도는 훨씬 넘어 있었다. 몇 날 며칠 아무 때나 떠오르고 떠올릴 때마다 촉감 좋은 이불을 덮는 것처럼 따뜻해졌다. 살아오는 동안 온몸에 고랑을 파듯 함부로 파헤쳐졌던 시간에 고운 흙이 덮여 편편해졌다. 어디선가 생명력 강한 씨앗이라도 날아온다면 어쩌면 곱디고운 야생화 한 송이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건 균열 정도가 아니라 진동이요 지진이라고 해야 맞다.양준일 ©롯데홈쇼핑 화면 캡쳐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4년 전
[논객칼럼=서석화]그렇구나!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뜨거워지지 않은 건 아니었구나! 불꽃 피어오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무심한 사람의 냉정한 입술처럼 묵묵부답은 아니었구나!시뻘건 몸짓 보이지 않아도 백도까지 펄펄 끓게 하고, 열 오르는 현란한 소리 하나 없어도 그 위에 얹히는 순간 몸은 데워지는구나! 이십일 만에 나는 인덕션 앞에서 웃었다. 죽전으로 이사 온 지 이십일 째 되던 날이었다. 나를 모른 체하던 사람의 무릎을 꿇린 것처럼 나는 감격했고, 그 감격이 너무 생생해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지난해
머리가 녹아내려버렸다. 어깨를 덮고도 한참이나 긴 내 머리가 녹아버렸다. 도저히 모양과 촉감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불에 타 엉키고 오그라든 거친 무명실이 빗물에 대책 없이 젖고 있는 모습.감은 지 10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아 축축하고, 이빨 빠진 잇몸처럼 힘없이 건들거리기만 하는 머리카락들. 한 시간이 넘게 억지로 드라이로 말리면 폭탄 맞은 실 더미가 되어 귀신 저리 가라 하는 모양의 나를 만들어 놓는 머리.지금 내게 머리랍시고 붙어 있는 녹아버린 내 머리카락이다. 흰머리가 늘어나며 어쩔 수 없이 하게
어머니가 떠나자 모든 것이 빨라졌다. 2016년 8월, 여름 한복판에서 어머니를 잃은 나는 가을도 빨리 맞았고, 나이도 빨리 먹었다. 눈 뜨고 보면 가을이었고 고개를 돌려보면 남들이 새해라고 말했다.그렇게 3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엔 내 신간 [이별과 이별할 때]가 놓여 있다. 이영철 화백의 작품 를 표지로 한 이 책에는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1246일 동안 기록한 생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출간 소식이 전해지자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출렁거렸던 문
저절로 두 팔이 올라갔다. 반가운 사람과의 조우라도 그렇게 기뻤을까? 그렇게 단숨에 발길을 멈추게 하고 그렇게 단숨에 그때 그 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 수 있었을까? 나는 올린 두 팔로 40년 세월을 거뜬하게 안았다. 하나도 지워지지 않았던 시간이 하나도 무겁지 않게 내 두 팔 안에 안전하게 들어왔다. 하트는 저절로 만들어졌다. 올린 두 팔 아래 양 손가락 열 개가 40년이란 시간 앞에 인사하듯 모아 내려졌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인사동 빵집 앞에서였다.“더 뜨겁게, 더 환
어머니 3주기가 다가온다. 음력 7월 4일, 올해 양력으론 8월 4일 일요일이다. 6일이 내 생일이니 꼭 이틀 전이다. 어머니는 내 생일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그러니 기일은 살아있었던 날로 하기 때문에 이틀 전 7월 4일이 기일이다. 6일 새벽 다섯 시 십오 분에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가 전날인 5일 오후 네 시 사십 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태어난 지 오십육 년을 열세 시간 남겨놓고 어머니를 잃었다. 아니 어머니가 나를 낳은 지 오십육 년을 열세 시간 남겨놓고 딸을 떠나갔다.
[논객칼럼=서석화] 모두에게 물었는데 내가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때가 있다. 보편적인 대답을 기대하는데, 나 개인의 특별한 답을 내놔야 할 때가 있다. 삼 년 만에 지인 K의 전화를 받은 후, 지금 내가 그렇다.처음 며칠은 그녀가 근황이라며 알려준 ‘하는 일’ 때문에 솔직히 마음이 아팠다. “나 요새 뭐하는지 모르죠?”삼 년 만에 불쑥 전화를 걸어놓고 K는 대뜸 묻기부터 했다. 비슷한 시기에 문단에 나온 데다 연배도 비슷해 알고는 지냈지만, 특별한 정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솔직히 나는 아무것도
신기했다. 반갑고 들뜨고 호흡 수가 늘어나며, 처져 있던 맥박 수도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놀이가 있다니! 이렇게 모든 걸 갖춰주고,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주는 이런 놀이가 있다니!생각과 마음에 작은 기둥 하나 세웠을 뿐인데, 안 되는 일 없고, 만나지 못할 사람 없으며, 갖지 못할 것이 없게 하는 이런 놀이가 있었다니!부족함이 채워지고, 후회가 날아가며, 미련이 메워지는 이런 놀이가 있다니!( ) 셈 치고!괄호 안에 무엇을 넣든 다 내 것이 되는 놀이!방송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수미에게 나
[논객칼럼=서석화]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가 기억하는 날짜, 기억해야 하는 날짜는 몇 개 정도일까? 그리고 그 날짜는 어떤 의미, 어떤 시간으로 오고 갈까? 해마다 얻어지는 365일, 1월부터 12월까지 삼백육십 다섯 개의 날짜가 들어찬 달력을 펼쳐본다.별표를 하고 별표의 의미를 적고, 평상시완 분명히 다른 마음으로 기억을 환기시키는 그런 날짜들이 보인다.대부분이 기쁘고 환영해야 할 날짜들이다. 가족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특히 작년 시월에 아들이 결혼해 분가한 후론, 며느리의 생일도 구월의 아주 행복한 일
[논객칼럼=서석화] 썼을 뿐인데, 그냥 꽤 오랫동안 가슴에서 웅성거리며 떠나지 않던 이 짧은 문장을 그냥 썼을 뿐인데, 인적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외딴곳에 떨어진 기분이 든다.나무 한 그루도 없고 풀 한 포기 소생 기미도 없는 휑하고 냉기 성성한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아니 ‘우리’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우는 사람, 울어줄 사람이 없는 장례식장! 울지 않으니 떠난 이의 영정과, 검은색 상복을 입고 서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주는 몇 사람만 없으면, 여기가 장례식장인지 친척과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오랜만에 불쑥 나타난 단어 하나에 온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언제 만나고 어떻게 잊어버렸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단어! 한번쯤은 내 입에서 나오고 또 한번쯤은 문장에 섞어서 썼을 수도 있는 단어! 그런데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였는지... 어쩌면 이리도 자연스럽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과거형의 말을 내뱉고 있을까? 울창!명사 ‘울울창창’의 준말, 주로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매우 풍성하고 푸름. 더 이상의 설명이 오히려 사족이 되는 말 중에 이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각인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각인된 얼굴이기 때문이다. 각인된 몸짓이기 때문이다. 각인된 내음이기 때문이다. 백 년이 흘러도 그 자리 그 시간으로 데려간다. 데려가서 내게 들려주고, 내게 보여주고, 나를 붙잡아주고, 내 오감을 집중시킨다.기억이 아픈 이유는 그렇다. 내가 나에게 새긴 시간의 문신! 사포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사방의 시간을 끌어와 그 자리에 밀어 넣어도 숨구멍 하나 열리지 않는다.천 일쯤 자고 나면 딴 세상일까? 천 일의 열 번을 눈 감고 있으면, 돌투성이 샛길이라도
눈 내린 다음 날 새벽길을 걷는다. 체감 온도 영하 십팔 도라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바짝 조여 두 번 감은 모직 머플러를 냉기로 풀풀 날리게 한다. 해가 뜨기 전의 세상, 아직은 반달도 되지 못한 여윈 초승달이 냉기에 한기를 더한다. 이미 어젯밤에 멈춘 눈은 더 이상 설국을 꿈꾸게도, 부스스 살아나던 그리움이며 소망 같은 것에 숨을 멈추게도 하지 못한다. 춥고, 미끄럽고, 누군가가 앞서 지나간 발자국으로 비뚤비뚤 어지럽다. 먼지가 파고들어 속살까지 휘저어 놓은 눈이 땅에 주저앉아 있는 눈길을 나는 그렇
마중 나온 이가 웃는다. 세상의 예를 다 모은 듯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귀하다.어여쁘다.내 살인 듯 부드럽고 내 피인 듯 따뜻하다.삼십 년 정붙인 듯 어느새 내 온 시간의 주인이 되어 새벽을 열고 대낮을 살게 하며 감사와 안도의 저녁을 맞게 한다. 아들의 결혼으로 나는 한 생에 네 번째의 세상을 살고 있다.첫 번째 세상은 부모님의 마중으로 “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 단음절의 이름에 맞게 상큼하게 출발했다.두 번째 세상은 남편의 마중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두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온다는 예감도, 오라는 초청도, 간절한 구애도 없었는데, 불쑥 들이닥쳐 희망과 의지와 다짐과 함께 살아갈 힘을 새롭게 실어주는 순간을 맞았다. 특별히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 한편에서 잔잔한 그리움과 궁금증을 갖게 하던 지인이 보낸 짧은 문자가 그랬다. “질긴 놈이 모진 놈을 이깁니다.”오랜만에 받은 문자였다. 취업을 했다는 소식과 함께 나이 들어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의 애환을 그녀는 이 한 문장으로 내게 전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직종의 업무인데다 상급 직원들 대부분이 조금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2018년 7월, 전쟁처럼 들이닥친 폭염으로 온 국민이 무장군인처럼 예민해져 있는 이때, 나는 그의 죽음에 바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애도의 문장들을 만났다. 이 글에서는 그 정치인의 실명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있는 자리에 그 자리에 없는 웃어른을 높여 일컫는 삼인칭 대명사 ‘당신’을 놓은 것은 그런 이유다. 당신이라서 웁니다!하늘에 새로 빛나는 별이 뜬다면 당신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수식이 최대한 절제된 짧은 문장, 슬픔과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참 많은 걸 버려왔다. 욕심인 줄 모르고 꿈이며 소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외로운 게 싫어 아니다 싶으면서도 희미하게라도 이어오던 관계들. 버리는 것은 우려만큼 어렵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인정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람도 사물도 꿈조차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은 막상 버릴 때 아깝지도 않았다. 당연히 미련도 남지 않았다. 내 마음만, 그리고 내 결심만, 실행하면 간단히 손 털고 돌아설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십 년, 그렇게 나는 ‘내려놓음’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걸 ‘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