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조사…"기업 73%, 노동안전대책 효과 없어"
"과징금·영업정지 강화 부담, 현행 처벌도 과도해"
경영계의 대체적 시각 반영...노동계는 "빈틈 많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3년간 887건, 943명 사망
"대우건설·현대건설·한전·산림청 등 사고 반복돼"
우리나라 기업 10곳 중 7곳은 정부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안 될 것으로 판단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업주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재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에 불만이 가득한 경영계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그동안 경영계는 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고용·노동 관련 법률상 기업 형벌 규정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노동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올해 들어서도 노동자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산업재해 근절을 위한 사전 예방 노력은 물론 사후에고 강도 높은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실제로 내려져야 기업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국내 기업 26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새 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한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발표된 노동안전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들의 인식과 애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안전 종합대책 내용을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의 73%가 '정부 대책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로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집중됐다'라는 답이 57%로 가장 많았다.
경총은 "정부 대책이 획일적인 기준 적용 및 법 위반 적발, 시정 기회 없는 처벌 위주의 감독 정책으로 전환한 것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가 조사 결과에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안전 종합대책 중 기업에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것은 '과징금, 영업정지 등 경제제재 강화'라는 답변이 44%로 조사됐다.
특히 사망사고 발생 시 현행 사업주 및 기업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입장이 76%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대표이사가 실형을 선고받는 상황에서 영업이익 기반의 과징금 제도 신설 및 영업정지 대상 확대는 기업 경영활동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 반복 기업에 대해 과징금 부과 및 영업정지 대상 확대 등의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선 조사기업 66%가 반대입장을 표했다.
또한 기업들은 사업장 감독 시 시정 기회 없이 즉시 처벌하는 것에 대해 94%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처벌 위주 감독이 산재 예방에 도움이 안 돼서(46%)'가 가장 많았다.
경총은 "기업들은 사업주 책임만 강조하는 정책과 사후제재 중심의 대책에 부정적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정부와 국회는 엄벌주의 정책 기조를 지양하고, 안전규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법령 정비 등 사전예방 중심으로 정책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중대재해법 시행 4년 지났지만…노동자 사고 여전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22년 1월 시행 전부터 실효성과 적절성을 놓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갈렸다. 노동자 사망 사고를 줄이자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산업 현장 전반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특히 당시 경영계는 과도한 처벌 수준과 애매모호한 일부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 등이 기업인의 처벌 공포만 키운다며 강한 우려와 반발을 표출했다.
반면 노동계는 오히려 처벌 수위가 낮고 처벌 범위도 좁아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며 맞섰다.
우리나라 산업 현장내 안전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 정도로 산업재해 사망자가 많은 상황에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제 처벌이 이뤄져야 기업이 변하고 구조적 원인을 개선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과거 수년간 우리나라는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산업재해가 빈발하지만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현재 수많은 나라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운영하고 있는데, 산안법과 별개로 중대재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법을 제정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이 있다.
산안법이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정하고 감독하는 행정법이라면,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 발생 시 처벌하는 형사법이다.
중대재해법은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확보의무 등의 조치를 소홀히해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우여곡절 속에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이후에도 매년 중대재해 사고가 속출하면서 법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중대산업재해 현황 자료를 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약 3년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총 887건에 달했다.
이로 인해 943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중 552건(62.2%)이 하청에서 발생했고, 사망자의 63.8%(602명)가 하청노동자였다.
이번 자료는 정보공개센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원청·하청 기업명을 모두 포함한 중대재해 자료를 공개한 최초의 사례다.
주목되는 점은 사고가 일부 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사고의 25% 이상(226건)이 사고 건수 상위 10% 기업(73개사)에서 발생했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포함해 한국전력공사, 산림청 등 공공기관에서도 반복적으로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도 산재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지난 20일 슬러지(찌꺼기) 청소를 하던 50대 용역업체 직원 2명과 현장에 있던 40대 포스코 직원 1명이 유해가스를 마셔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초 불산가스 누출로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난 지 불과 2주 만에 발생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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