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미술작가 권오상 씨는 사진을 활용한 입체 작품으로 주목받는 미술가의 ‘영스타’다. 인물을 비롯해 특정 대상을 부분부분 나눠 촬영한 사진들을 이어붙인 특유의 ‘사진 조각’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각이라면 대리석, 나무, 브론즈 소재의 육중한 작품을 떠올리지만 그의 사진조각은 재료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가볍고 이동도 수월하다. 지난 연말 권씨를 만나 조각 전공자로서 사진을 활용하게 된 작업의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미대 조소과에 입학한 1994월 3월 전공 수업 첫날, 작업실에서
지난 12월 8일 오후 3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는 박물관 특설 강좌가 진행됐다. 올해 마지막 수업이었다. ‘박물관 대학’이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이 강좌의 종강은 좀 특별했다.강사는 고고학자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본격 수업에 앞서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이던 1977년 박물관 1기 강좌 이후 올해 40기에 이르기까지 꼬박 40년간 강의해왔다”며 “오늘 강좌를 끝으로 중앙박물관 특강과 작별한다”고 밝혔다. 박물관 특강의 피날레 수업이 공교롭게도 원로학자의 퇴임 강좌였기에 수강생들의 감회도 남달랐다.
단발머리 여학생 시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 몇이 있다. 졸업 후 사십 년 세월이다. 고교 진학 후 처음 배정된 교실에서 키가 고만고만해 앉은 자리가 엇비슷했거나, 친구의 친구로 함께 어울리다 보니 두루 허물없는 사이가 된 ‘마이 디어 프렌즈’다.주변 사람들의 교우관계까지 살펴보니 그들 역시 초·중·고교 때 같은 교실서 지냈던 인연이 죽 이어져왔기에 흥미로웠다. 여럿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보면 학창시절 짝이나 앞뒤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비슷한 키의 친구 모임이 적지 않다. 학창시절
수년전 이탈리아 베니스의 미술관에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는 문자 작품을 대하곤 헉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한 작가는 미국 출신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다. 철학적 명제에서 단어 하나를 바꿈으로서 현대 소비사회를 은유하고 꼬집는 시각적 이미지를 펼쳐낸 작가의 아이디어는 절묘했다. 이달 말 이사를 앞두고 살림살이를 간추리며 수시로 그 작품이 떠올랐다. 옷, 신발, 가방부터 책, 그릇까지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저녁에’다. 밤하늘의 별에 삶의 인연과 영원을 그려낸 ‘저녁에’는 음악가, 화가와 만나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됐다. 강택구 작곡의 동명 가곡이 있다. 1980년대 남성듀엣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저녁에’의 마지
지난 토요일, 푹푹 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의 등산모임은 거르지 않았다. 여학교 동창 10여명이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만나 점심 무렵까지 3시간여 등산과 산책 그 중간 정도 난이도의 둘레길을 정기적으로 걷고 있다. 각기 집, 직장에서 종종걸음으로 여유 없이 살다가 여고 졸업 30년 후, 나이 쉰즈음 재상봉해 운동 삼아 만나온 지도 10년이 넘는다.산행 중 땀을 식히며 한담을 나누던 쉼터에서 한 친구가 말을 건넸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절로 가고 싶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추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4일 오전, 서울서 군산행 고속버스를 탔다. 탑승객은 4명뿐이었고, 월요일의 당일치기 나홀로 군산행은 날씨며 상황이 느긋하고 각별했다.전북 군산의 100년 전 근대 가옥에서 작업하는 사진작가 민병헌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다수 남아있는 근대 문화유산의 도시 군산,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로 60,70년대 골목길의 정취가 여전하다는 군산행. 며칠 전 서울 공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가와 시간을 맞춘 방문길이었다. 흔들린 듯 모호하고 은
오페라 공연장에서 중간 휴식시간에 옆 자리 관람객들의 말다툼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A는 “공연 중 그 쪽에서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니 불빛 때문에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항의했고, B는 “그렇다고 남의 팔을 툭툭 치다니 너무 불쾌하다”고 맞섰다. 두 사람은 뻘쭘해하는 각자의 동반자와 주변 관객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지 않고 상대방의 무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거칠게 드러냈다. 또 다른 실내악 공연 때에는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연주에 몰입해 있던 첼리스트의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는 모습도 보았다.
딸이 자기 옷들을 세탁소에 맡긴 후 찾아 달라기에 갖다 주면서 ‘드라이크리닝 값’을 요구했다가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옷 한 벌당 세탁비가 수 천원에서 수 만원까지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실상을 알려주며, 일종의 경제 교육을 하려는 어미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 초년생으로서 세탁비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야 옷을 살 때 물빨래가 가능한 소재인지도 챙겨보고 돈 쓰는 씀씀이가 규모 있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는데 말이다.그런 바람과 달리 딸과 남편은 물론 주변 지인들도 “뭐 그렇게까지”라며 나를 나무랐다. 공무원
지난해 늦가을 마당에 파묻었던 튤립 구근들이 언 땅에서 겨울을 나고 이제 막 붉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동네 골목의 담벼락 너머 벚꽃, 목련, 진달래, 개나리는 어느새 절반이상 꽃을 떨궜다. 생태학자가 아니라도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이른 봄부터 시간 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던 봄나무들이 요즘은 거의 동시에 화르륵 꽃을 피우곤 확 져버려 봄꽃 즐기는 시기가 너무 짧아 아쉽다고.이즈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제는 봄꽃 이야기다. 유독 한순간 피었다 지는 찰라적인 봄꽃을 좀 더 진하게 즐기기 위해 꽃구경에 나
학창 시절, 시험이 다가오면 교과서, 공책, 문구류가 널려 있는 책상 주변이 신경 쓰여 공부에 앞서 환경 미화부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도 시험 마지막 날 학교서 단체 관람할 영화의 원작 소설 ‘제인 에어’, 제목부터 매력적인 ’생의 한가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책들을 뒤적이고) 새 출발 준비하는 정리정돈, 생활의 절제 되새기게 해시험 공부에 앞서 주변을 정리하는, 무언가 큰 일에 앞선 워밍업의 절차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늘 닦고 치우는 깔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