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매 가을이 올 때면, 의무적으로 내가 가는 곳이 있다. 누구와 가는지에 따라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다양했었다. 가족끼리 갔을 당시에는 편안함과 묘한 안정감이 나를 풀어놓았고, 친구와 갔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한숨이 나를 크게 조여왔다.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에 갔을 때 색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수많은 발걸음을 남긴 기억의 공간이던 그곳은 어엿한 하늘공원이 되어 수많은 억새를 피워내고 있었다. 바람결에 몸을 서걱거리며 은빛물결이 가을바람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 아름다움 속에서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희곡작품이기에 여러 번 문장을 곱씹어보고 책이 닳도록 되새김질 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해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또 다시 책을 펼치게 만드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과 무거운 주제를 희극적 장치로 보여주는 매력적인 아이러니 때문일 것이다.‘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느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그루만이 서있는 언덕 밑에서 늙은 두 방랑자(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가 ‘고도(godo)’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단지 그것으로 시작돼 끝이 난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불과 60년이란 짧은 시간에 급속한 사회 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겪었다. 각 세대는 한국사회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살아가지만,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을 보이고 있다.기성세대의 경우 공동체주의와 권위주의를 지향하고,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와 탈권위주의를 추구한다.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공동체주의는 산업화, 도시화의 유입을 통하여 그 안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빠르게 변화했지만, 위계적인 공동체 문화 또한 여전히 남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게다가 서로의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학교나 가정에서는 내게 결과가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럼에도 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고, 그에 대한 확답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의지하고 존경하던 고등학교 선생님께 “결과도 중요하지만 정당하게 이뤄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과정도 중요하고 가치있는 행위도 의미있지만 결국은 그 끝이 어떠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것이다. 너무 옳은 과정만 쫓지 말고 때론 요리조리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방법을 찾아라” 한마디로 정당한 과정이 옳지만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울 시립승화원, 납골당에는 축축한 비 냄새가 켜켜이 쌓여갔다. 사람들의 서린 숨소리만이 먹먹히 허공에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붉은 꽃향기에 점점 어지러이 취해가고 있었다. 시든 꽃들의 잔향은 역한 향기를 뿜으며 내 곁에서 치근거렸다.짙은 꽃 향이 식도를 타고 흐를 때마다, 전하지 못한 무형의 언어들이 켜켜이 쌓여 갔다. 내뱉지 못한, 전하지 못한, 그래서 더욱 순백한 하얀 어둠이 응어리가 되어 내 몸속에 깊게 고여 있었다.엄마는 눈물로 절여진 뺨을 닦으며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로, 정유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6년째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 누구보다 성실한 모범환자인 ‘수명’과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은 ‘승민’이 엮이면서 그의 평화로운 병원라이프가 흔들리는 내용이다. 이유도 없이 강제로 병원에 갇히게 된 승민은 어떻게든 이 곳을 나가야만 하는 같은 방 동기이자 동갑내기인 수명을 꼬드겨 탈출을 감행한다.작품 자체의 주제가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수긍 가능한 것이었다. 또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도 전쟁이라는 거대한 고통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에서 수전 손택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분쟁지역의 사진을 보면서 전쟁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카메라와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분쟁 지역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됐지만 손택의 지적처럼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한다고 책에서 주장한다. 시를 쓰는 것은 내게 있어 엄청난 고통이었다. 많은 대학들과 백일장 심사위원들은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이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 100만 명 대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의 경우 배우가 당시 상황을 재연해 연기하는 방식이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의 후속작인 만큼 실제 사건 가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스토리를 구성했다. 전편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가해자의 눈이 아닌, 피해자의 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액트 오브 킬링, 가해자가 승리한 세상영화는 학살 피해자 람리의 집에서부터 출발한다. 람리의 동생 아디는 안경사라는 직업을 매개로 자신의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1965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도네시아 군부정부는 동남아시아 공산화를 두려워한 서구국가들의 묵인 하에 100만명이 넘는 정적들을 학살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이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소작농, 화교, 지식인, 반정부인사들이었다. 당시 학살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끔찍했냐면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강과 하수도가 막힐 지경이었다고 한다.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당연히 피해자 진술을 들을 생각이었지만,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비전향 장기수는 국가보안법·반공법·사회안전법으로 인해 7년 이상의 형을 복역하면서도 사상을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는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의 일상을 12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한다.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 자유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영화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서대문 구치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전향 공작을 당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한 언론은 간첩을 촬영할 때 특수조명까지 활용해 이들을 험상궂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애니메이션 은 기억과 망각의 이중무다. 1982년 레바논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 두 지역에서 일어났던 대학살의 기억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흥미롭게도 이 기억에 관한 영화는 감독 아리 폴만 개인의 망각에 대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는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 중 한명으로 그곳에서 벌어진 많은 참사를 목격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어느 날 돌아보니 자신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리 폴만은 이 이상한 경험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