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결혼식 참석을 위한 외출을 한다. 계절의 여왕 5월 답게 날씨가 찬란하다 못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평소 잘 안 입는 치마까지 꺼내 입었는데, 적당한 온도와 세기를 가진 봄바람이 치맛자락을 흔들고 내 마음도 같이 흔든다. 측근들은 사실상 거의 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 결혼식 참석 이벤트는 이제 내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늘은 한 학번 위인 선배 오빠의 결혼식이다. 엄청 친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선배다. 사실 나는 이 오빠하고는 대화를 길게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항상 오빠에 대해 좋은
사람들은 주문한 음식을 내 방에서 먹어야 하는 이기심을 모른다. 음식 배달은 인간과 지구를 향한 난폭한 습관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고, 집에서 먹어야 한다면 적당히 먹어도 괜찮은 무던함의 윤리는 무시받기 십상이다. 겨우 배달 음식이기에. 그러나 잦기에, 배달 음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화 된 탐욕의 집체다. 돈이면 다 정당화 된다. 그러나 돈이 세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2005년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 할 때, 짜장면은 3,000원이었다. 일당은 평일 30,000원, 주말 35,000원이었다. 최
매일매일 발생하는 사회 이슈에 관해 쓰는 것이 최근 나의 생계다. 생업이 그렇다 보니 글을 최대한 빨리, 쉽게 써야 했다. 사실 내가 직접 쓴다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이미 쓴 기사를 독자들이 보다 읽기 편하게 편집하는 것이다. 이런 나를 지칭해 사람들은 우습게도 ‘기자’라 부른다.내가 쓴 ‘글’에는 수많은 이들이 댓글을 단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댓글을 꼼꼼히 읽기도 했지만, 이제는 잘 보지 않는다. 보나 마나 수많은 욕이나 비방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기사를 쓴 나에 대한 비방뿐 아니다.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원색적 비
민원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사회적 약자와 만날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절박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과 대면하면 절로 조심스러워진다. 혹시 내 말이 의도치 않게 상처되진 않을지, 더 도움 될 만한 제도는 없는지 열심히 고민하게 된다.언제나 그렇듯, 사회적 약자 가운데에도 일정 확률로 무례한 사람이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성과 욕설로 대응하고,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창구 - 관리자 내선번호, 감사실, 국민신문고 등 - 를 통해 분풀이를 한다. 일이 복
집 앞 대형마트가 리모델링을 한다고 잠시 문을 닫았다. 줄어든 쇼핑객만큼 한산한 집 앞 거리에는 플래카드들이 내걸렸다. 절규하듯 외치는 플래카드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마트 직원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리모델링 목적이 인원감축? 일방적인 강제 타점 발령 중단하라!’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을 연 마트 안에는 리모델링 전보다 훨씬 더 줄어든 적은 수의 직원들만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고, 캐셔가 있던 자리는 키오스크가 대체하고 있었다. 키오스크 주변에는 ‘계산은 키오스크가 아닌 점원에게 와서 해달라’는 쇼핑객들을 향한 간곡
회사 직원 중 하나가 포르쉐를 샀다. (정확한 가격은 당연히 모르고) 포르쉐가 비싼 차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래?라는 반응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워낙 차에 관심이 없어서 별 감흥이 없기도 했고, 업무 퍼포먼스 최악에 인성까지 터무니없는 그 직원의 소식 따위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직원이 포르쉐 중에서도 카이엔을 샀다는데 그 이름도 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포르쉐 타이칸은 동생 친구가 타고 다녀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의 포르쉐 구입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충
침대에 누워서도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시간과 날씨를 알려주는 애플의 '시리'나 우리의 취향을 늘 앞서 제안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해졌다고 한들 이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의를 봐주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올초에 등장한, 1조 개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최첨단 AI로 무장한 '챗GPT'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가치판단' 행위를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우리 기계보다 너희 인간이 나은 게 대체 뭔데?'라고 따져
#장면1 최근 회사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을 들었다. 두 분의 연사가 회사로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었다. 그중 한 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유창하게 강의를 전개하기에 전혀 알지 못했는데, 중간에 퀴즈를 내겠다고 말한 후 음성이 아닌 손짓으로 답변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답을 알 것 같은 문제에 손가락으로 3번을 표시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는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강연을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명사를 눈앞에서 보기도 했고, 한때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의 롤
[논객닷컴=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필명인 청년실격이 탄생하게 된 비화는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신문 기사를 읽던 중이었다. 거기엔 매 끼니 라면을 먹는 공무원 수험생 하루를 타임라인으로 그렸다. 그리고 '오늘날의 청년'이란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신문에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를 그렸다. 시위 현장이었다. 옛날과 달리 정치에 적극적인 '오늘날의 청년들'과 비슷한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강연에선 스타트업, 새로운 기술에 적극적인 청년을 그렸다. 이제는 취업보단 창업에 힘쓰는 '청년'에 대한 풍경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논객닷컴=앤디 청년칼럼니스트] 몇 년 전 대리시절, 내가 일하고 있는 지점에서 청년 인턴으로 일했던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지금까지도 연을 이어올 정도로 그때부터 친하게 지냈다. 막 친해지려고 할 무렵, 그 친구가 내게 대리님은 회사에서의 말투가 정말 다르신 것 같다고 했다. 일을 할 때는 말투 자체가 너무도 드라이하고 툭툭 끊어져서 저 분이 어제 나와 웃으며 저녁을 먹은 분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분명 친해졌다 생각했는데 일을 가르쳐 줄 때의 표정과 말투 때문에 초반에 무척이나 헷갈렸다고... 비즈니스와 관련된
[논객닷컴=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SKY 다음을 생각했어야 했어요.”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말이었다. 졸업해야 했지만, 졸업하게 되면 학생으로서 완전히 마침표를 찍는 것이어서 졸업을 유예했다. 학생에게는 다음 문장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은 아마존 한국 지사에 합격하고도 입사하지 않았다. 합격 직후 충족된 자존감에 기뻤지만, 입사를 앞두며 커지는 감정은 공포라고 했다. 3학년 때 인턴 경험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음을 확신했기에 그렇게 살기 겁났다는 것이다.돌이켜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이날 현실 공간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청년칼럼니스트] 잊을 만하면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새롭게 제작된다. 순위 조작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례가 있음에도 시청자 투표를 통해 새로운 아이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돌이 되기란 이렇게나 어려운데, 마의 7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수 아이돌이 되기란 쉽지 않다. 9~10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던 아이돌도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아이돌은 수명이 짧은 직업이다. 때문에 자연스레 어떻게 해야 마의 7년을 잘 넘길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얼마전 성황리에 콘서트를 마친 레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전 회사 팀장은 무능력했다. 내겐 첫 팀장이라 레퍼런스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유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입사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팀장이 오늘 조금 늦게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었다. 월 말이면 늘 있는 재고 마감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마치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확신의 눈빛으로 물론이고 가능하다고 답했다. 팀장은 반갑게 웃으며 저녁 먹고 와서 조금 더 얘기하자고 했다.그리고 나는 저녁 11시까지 그와 말도 안 되는 엑셀
한 장면 한 장면 음미해서 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를 검색하다가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잡지사와 인터뷰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배웠다. 시절인연...? 뜻을 모르는데도 소리 내서 읽을 때부터 원인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검색창에 얼른 시절인연을 쳐봤다. 나무위키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 보자면 이렇다.'현대에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하며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청년칼럼니스트] K-pop 산업이 부흥할수록 개체수가 늘어가는 집단이 있다. '사생'이라는 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1세대 아이돌부터 시작한다.집안에 침입한 사생팬을 선처해 돌려보낸 게 화근이었을까. 팬이라는 이름 아래 아티스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생들이 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만행에도 팬의 애정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아티스트들은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팬이라는 말을 굳게 믿고 유해 물질이 들어간 음료를 마셔 크게 다쳤던 사건도 있기에 팬과 아티스트의 거리는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청년칼럼니스트] 수능 끝난 날을 기억하시는지? 해방감이 만끽되는 와중에도 구석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감정이 있었다. 내가 치열하게 매달렸던 그 공부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추진체에 지나지 않았다는 허탈함.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쓸모없는 것에 지나치게 최선을 다했다. 부모님 반대로 자퇴도 못한 나로서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삐딱해질 수밖에 없었다.공교육과 사교육은 다를까? 툭 까놓고, 두 교육 주체의 목적은 ‘좋은 대학 보내기’다. 공교육은 인성, 적성, 재능, 자아실현 같은 교과서적 명분이라도 세우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칼럼니스트] 첫 팀장은 웃는 얼굴이 귀여운 아저씨였다.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대던 그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같았다. 마르고 작은 체형도 그런 이미지에 한몫했다. 제조회사의 군대문화를 걱정했던 난 팀장을 보며 안도했다.팀장은 출근인사를 드릴 때마다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아들이 내 또래여서 요즘 20대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힘들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했다. 6시가 되면 눈치 보지 말고 퇴근하라는 말도 거듭했다. 우리 팀장님은 민주적이라며 동기들에게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환상이 깨
[오피니언타임스=우달 칼럼니스트] 누구나 대기업 혹은 공공기관, 적어도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길 꿈꾸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묵묵히 중소기업 한 구석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기업 종사자 중 80%가 중소기업, 8%가 중견기업, 12%가 대기업에서 일한다고 하니 대부분은 대부분이다.재미있는 건 현실과 달리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비율이 거꾸로 뒤집힌다는 점이다. 너도나도 '저 초봉 5000인데 기본은 되나요?', '이번 성과급은 몇 백 퍼센트 예상합니다'와 같은 자랑글이 넘쳐난다. 물론 자랑할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쓸 테니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취준생 땐 회사를 대학처럼 생각했다. 삼성전자는 서울대, 하이닉스는 연고대로 등치 했다. 주문같이 외워지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 시가총액을 대입했다. 행복도 비례할 것만 같았다. 1등 회사 입사자가 15등 회사 신입사원보다 15배만큼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재수, 편입을 하면서 못한 인서울을 취업이라는 구간에선 대기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 대기업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내가 원하는 직무로 옮기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는
[오피니언타임스=앤디 청년칼럼니스트] 얼마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가기로 한 식당까지 같이 걷는데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저번에 내가 말한 그 드라마 봤어? 그동안 네가 회사 얘기 할 때마다 사실 이해 잘 안 됐었는데 나 그거 보고 완전... 네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알겠더라.일단 친구가 말한 드라마의 배경이 나의 회사와 다르기도 하고 아직 못 봤기 때문에 그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 반영에 충실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분명한 건 굳이 퇴근하고 나서 내가 속한 현실의 답답함을 되새기고 싶지 않기에 친구가 그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