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이 불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인 선생님을 찾는데 나에게 이 일을 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흔쾌히 하겠다고 대답했다.그런데 얼마 후 회사 측에서 답이 오기를 가능하면 ‘금발의 여자’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금발도 여자도 아니므로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내 어머니도 할머니이긴 하지만 금발이니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금발은 백인을 전제로 하는 말이니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고, 여자여야 한다는 조건으로 ‘성차별적’
유럽의 역사는 광장의 역사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나 시내 중심부에 시청사와 성당 주변에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광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발전하였다. 광장은 문화 교류와 의식 행사, 군중 집회가 열리는 곳이자, 장터이며 모든 정보가 교환되는 소통의 장소이다.8월 초 북유럽의 발트 3국, 러시아와 핀란드를 여행했다. 공통점은 광장문화였다. 첫 번째 방문지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리우스 구시가지, 구시청사 앞 광장. 새벽문을 들어서 개선문에 이어 국회의사당을 지나면 구시청사가 위치하는데 구시청사 앞 넓은 광장은 뒤
‘신신신야 의의역신야(信信信也 疑疑亦信也)’순자(荀子)의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 나오는 말이다.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이 신(믿음)이며, 의심할만한 것을 의심하는 것 또한 신(믿음)’이라는 얘기다. 순자는 ‘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파했다. ‘말을 해서 마땅한 것이 지(知)이며, 침묵해서 합당한 것이 또한 지(知)이다’라고.믿음만 놓고 보자. 순자의 말은 믿을 만한 것은 믿어야 하지만, 반대로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것은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과 부정이 있다면 이를 마땅히 의심해 사실을 밝히고 바로 잡아야 믿음
막 한중수교가 이뤄졌던 1990년대 초, 나는 베이징 지사의 주재원으로 북한 사업을 겸하고 있었다. 사업이 사업인 만큼 북한에서 출장 나온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역시 동양 문화권에서는 술이 한 잔 들어가야 속에 있는 말도 하고 소위 끈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법인지라 술집에서 함께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즈음 중국에서도 가라오케가 대 유행이어서 식당이나 술집 할 것 없이 녹음 반주에 맞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중국 노래는 물론 웬만한 남한과 북한의 노래가 망라되어 있었는
병역의무는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헌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병역 비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는 추세다.해외 유학을 가서 법적으로 입영 의무가 해소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수법은 고전 중의 고전에 속한다. 보충역이나 면제를 받기 위해 개발한 기법들을 보면 가히 금메달감이다. 이들은 우리사회의 상층, 즉 권력을 가졌거나 돈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천민(賤民) 상층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 중 하나이다. 사회 상층의 병역 비리 여전&hellip
대통령 선거 바로 전 해의 추석 연휴는 대선의 출발선이다. 대선 주자들의 목소리와 행동 반경은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커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언론은 대선 주자들의 추석 민심 탐방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잇따르는 지도층의 비리… 나라 망치고 있다는 탄식 나와대선 주자들은 민심을 탐방하며 그 흐름을 꿰뚫는 핵심 메시지, 곧 시대정신을 선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지금 그들이 한결같이 내세우는 메시지는 격차 해소, 양극화 해소, 상생과 공존 등이다. 크게 보면 경제 민주화의 다른
흔히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라 일컫는 경주에는 1만 2800 채 남짓한 한옥이 있다. 그런데 최근 규모 5.8의 강진이 덮치고 여진이 이어지면서 전체 주택의 20%에 이르는 2031 채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실제로 기와가 흘러내려 붉은 황토가 거칠게 드러난 지붕의 모습은 마치 ‘한옥은 지진에 약하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경주 지진으로 한옥의 기와 흘러내렸지만 인명피해는 없어경주시는 한옥보전지구에 한옥을 새로 짓는 사람에게는 최고 1억원을 지원한다. 보전지구 밖이라도 최고 7000만원을 지원해 역사 도시다운 ‘스카이라인’
최근 제목만 봐서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자본주의를 구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마틴 포드(Martin Ford)의 ‘로봇의 부상’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 클린턴 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공공정책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틴 포드는 실리콘벨리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해 경영했던 컴퓨터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이다. 이렇게 경력과 전문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인 셈이
50일도 채 남지 않은 2016년 미 대선이 다시 승패를 점치기 힘든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잇단 막말 파동과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부족 논란으로 공화당 후보 지명이라는 이변을 일으킨 것이 한계라는 지적을 받았던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왔다. 트럼프는 이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승패를 점치기 힘든 박빙의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달여 전만 해도 20%에도 미치지 못했던 트럼프의 대선 승리 확률은 40%로 올랐다. 트럼프가 클린턴을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고 있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한가위를 보내고 이참에 손님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싶어 제목과 같은 화두를 잡았다. 태양의 서커스 명작인 ‘퀴담’으로 손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의 거리 공연자 기 랄리베르테가 1984년에 퀘백시 근처 작은 마을에서 설립한 서커스 회사이다. 전통적 서커스의 통념을 바꾼 블루오션 사례로 통한다. 그 회사의 1996년 첫 작품이 ‘퀴담(Quidam)’이다. 퀴담은 라틴어로 익명의 행인이라는 뜻인데 트렌치코트에 머리가 없는 모습으로 외로운 소녀 조(Zoé)에게 나타나 그녀를
지난 9월 5일 양승태 대법원장은 김수천 부장판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데 대해 사과하면서, 앞으로 밝혀질 내용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10년 전인 2006년 8월16일 당시의 이용훈 대법원장은 조관행 고법부장판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데 대해 사과했었다.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면서, 법조비리 근절 대책으로 법관 징계절차 외부인사 참여, 법관 재임용 심사 강화, 법관 징계시효 연장, 법관 감찰 강화 등 4개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시된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
과격파 운동권 출신인 이치로. 대담하고, 제멋대로이고, 누구도 겁내지 않는 40대 중년이다. 국가와 사회, 모든 체제와 제도를 부정한다. 아들에게 다니기 싫으면 학교도 그만두라 하고, 세금도 일절 내지 않는다.임순례 감독이 한국으로 무대를 바꿔 영화로 만든 일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의 주인공이다. 그는 국민연금 납부를 독촉하러 방문한 공무원을 ‘구청에서 온 장사꾼’ 취급하면서 이렇게 소리친다. “체제에 빌붙어 사는 개 따위와 말 섞을 마음은 없어. 나는 관청이 벌레보다 싫어. 국민세금의 떡고물로 연명하겠다는 그
모든 사람이 잠재적 기자인 시대다. 누구나 ‘나도 기자다’라고 말할 수 있다. 특정 매체에 속하지 않아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등단 과정 없이 작가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파워블로거의 힘은 어지간한 매체의 기자나 작가를 능가한다. 페이스북 운영만 잘해도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읽고, 관찰하고, 메모하고, 쓰고, 고쳐 써보는 5가지 훈련이 기본그래서인가. 아니면 삭막한 세상에서 글의 힘을 빌려 외로움을 달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사마천은 ‘자객열전’에 다섯 명의 암살자 전기를 실었다. 노나라 ‘조말’은 제나라 환공을 비수로 위협해 빼앗긴 땅을 모두 돌려받았다. 오나라 ‘전제’는 당시 왕 료를 암살하여 공자 광이 왕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진나라 ‘예양’은 왕 조양자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제나라 ‘섭정’은 한나라 재상 협루를 암살했다. 연나라 ‘형가’는 진나라 정(후의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으나 발각되어 죽었다.사마천은 왜 굳이 ‘자객열전’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이들 다섯 명의 전기를 실었을까? 사기열전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사람은 백이와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저녁에’다. 밤하늘의 별에 삶의 인연과 영원을 그려낸 ‘저녁에’는 음악가, 화가와 만나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됐다. 강택구 작곡의 동명 가곡이 있다. 1980년대 남성듀엣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저녁에’의 마지
딸 아이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혀 손목잡고 나들이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감개무량함을 넘어 기가 막힐 정도다. 딸은 어릴 때부터 비교적 옷도 잘 맞춰 입었고, 나름대로 패션 감각도 있었던 데다가 이제는 패션 회사까지 다니니 그런대로 감각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개는 드레시하거나 패셔너블한 옷을 입는 편이지만, 가끔가다 오버사이즈(oversize)의 ‘아버지 패션’도 즐기는데, 오래 전 중학생 때 하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집안
‘과거 있는 여자’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오나.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소설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은 이런 여자 2명의 이야기다.마약 중독에 창녀의 과거가 있는 흑인 여성 낸시는 미국 남부 가정의 유모가 된다. 그를 고용한 백인 여성 템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역시 과거 창녀로서 겪었던 끔찍한 환영을 못 벗어나고 있다. 어느 날 낸시는 템플의 갓난아기 딸을 질식사시키는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 살인은 템플이 과거의 고통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대속(代贖)적 행위
공자(孔子)는 우리가 따를 행동 원리로 의(義)와 이(利)를 대조시킨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올바른 일을 위해 사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하고, 자기 개인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의보다 이만 좇는 세상…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지금 세계가 대부분 의(義)보다는 이(利)를 좇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부(富)하다는 나라에서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경제지수(GNP)에만 신경을 쓸 뿐 이른바 ‘행복지수’(GNH) 같은 것은 거의
필자가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 땅을 처음 가본 것은 1985년 1월이었다. 당시 입사 3년차로서 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타이베이와 홍콩, 일본이 목적지였다. 제주 상공을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고도를 서서히 낮추기 시작했을 때인데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화창한 날씨 아래 잘 정돈된 논 사이로 오토바이 한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눈으로 그 뒤를 쫒던 기억이 생생하다. ‘홍콩 간다’는
문화도 나이와 세대별로 영역이 나누어지겠지만 그 가운데 대중가요만큼은 아무래도 청년기 특유의 전유물이 아닌가 합니다. 한 곡의 가요작품에 담겨 있는 가사의 내용이나 곡조의 표현은 대개 청년기의 경쾌함, 발랄함, 멋스러움 따위를 반영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어느 시대건 삶의 중심을 이루는 세대가 바로 청년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대부분의 가요작품에는 젊은이의 사랑, 고뇌, 눈물, 고독, 방랑, 탄식, 고통 따위의 감정이 거울처럼 비쳐져 있습니다.지금의 노년층은 흘러간 한 때 모두 청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들은 강물 같은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