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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아버지를 여의고 고향 테바이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통치자 크레온의 법령을 어기고 죽은 오라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낸다. 크레온은 그녀의 오라비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전사한 그에게 어떠한 장례 절차나 애도 의식도 행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안티고네가 그 금령을 깨뜨린 것이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법적 규약에 대항하면서, 다른 근거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즉 크레온의 법령은 인간의 법일 뿐 그녀에게 더 의미 있는 것은 불변하는 ‘신의 법’이라는 것이다. 신의 법은 가족의 죽음에
일반칼럼
박정애
2020.11.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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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박정애]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 까닭은 비행기가 타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목적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할 때의 그 울렁증이 좋았다. 생활에 짓눌려 가라 앉아 있던 오감과 감수성이 깨어나는 그 기분을 누려보고 싶었다. 구름 위를 날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비행의 시간이 나를 젊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여행을 감행했다.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을 떠날 엄
일반칼럼
박정애
2020.11.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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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태풍 속으로 달렸다. 취소 불가능한 예약이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도로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해 단 시간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후 우린 콘도에 고립되었다. 모든 출입문이 폐쇄된 로비를 거닐며 밖을 바라보고 있는 어느 순간 출입문 한쪽이 퍽 소리를 내더니 유리 파편이 흘러내렸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유리들도 깨질까봐 겁이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방 안에 갇혀 거센 파도와 꺾일 듯이 바람에 휘둘리는 나무들, 그리고 신들린 듯이 나풀거리고 있는 현수막, 살수차로 뿌린 것처럼 사
일반칼럼
박정애
2020.08.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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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너도 말하라,가장 마지막 사람으로서 말하라,너의 말을 하라 말하라그러나 아니다를 그렇다와 가르지 마라.너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라그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라. 그림자를 충분히 드리우라,그것에 충분히......파울 첼란의 ‘너도 말하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한 그는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을 말하라고 절규한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그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하라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붙들어 세운다.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돌아서는 독자를 멈
일반칼럼
박정애
2020.07.3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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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고향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 하나는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줄이 긴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야 하는 깊은 우물이었다. 그 우물은 각 가정에 수도 시설이 없던 그 시절, 동네 사람 모두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튼튼한 나무 기둥 네 개를 세우고 파란 기와지붕까지 얹어 우리의 샘물을 소중하게 보존하였다.또 하나의 우물은 동네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키 낮은 분화구처럼 생긴 그 우물을 가운데 두고 주변엔 온통 논밭이었다. 그 우물은 들일에 지친 어른들의 휴식처였다. 일하다 땀이 많이
일반칼럼
박정애
2020.04.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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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코로나로 인해 2020년의 봄은 일그러져 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더 멀어지고 고통받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혹시라도 감염될까 싶은 두려움에 봄꽃들의 향연도 만끽하러 떠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반복되는 개학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정지수 또한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매일 신풍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바로 마스크 행렬이다.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고작 1500원 밖에 하지 않는 물품이지
일반칼럼
박정애
2020.03.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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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1월 하순에 접어들도록 제대로 된 눈 한 번 내리지 않는 겨울. 기후 온난화를 실감하는 이 겨울에 어떤 이름을 떠올려 본다. 그레타 툰베리!그녀는 올해 17세가 되는 스웨덴 소녀이자 ‘기후정의운동’의 최전선에 선 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학교 파업을 선언하고 1인 시위를 통해 전 세계 시민들이 ‘기후위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이 드디어 2019년 9월 21일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 비상행동’을 이끌어 냈다.‘IPCC’라는 약자로 잘 알려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에서 다섯 차
일반칼럼
박정애
2020.01.2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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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저자가 강연 중 ‘자신은 결정 장애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휠체어에 타신 어떤 분이 꼭 ‘장애’라는 표현을 써야 했느냐고 묻는다. 그제야 저자는 자신이 무심코 뱉은 표현에 혐오의 날이 서 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희망을 가지세요.’ ‘한국인 다 되었네요.’ 혹은 ‘똥남아, 똥꼬충, 급식충, 틀딱충, 맘충, 김 여사’와 같은 표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한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 역시 ‘선량한 차별주의자’
일반칼럼
박정애
2019.12.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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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나는 지금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10년째 살고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한 동네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니 이제 이 동네 사람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10년 내내 공사가 멈춘 적이 없다. 이사 오기 전부터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수 천 세대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미분양도 꽤 된다고 하니 이제 더 이상 짓지 않겠지? 하고 내심 기대했건만.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지하철 공사와 더불어 초역세권을 내세우는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또 시작되었다. 교통 혼잡은
일반칼럼
박정애
2019.11.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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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美)’라는 것이 있다. 얼핏 보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실용성, 효율성 등 현실적인 측면에서 ‘시(詩)’ 만큼 무용(無用)한 장르가 있을까. 하지만 이 쓸모없음이 어떤 고귀한 쓸모를 만들어내는지 한 시인의 삶을 통해 말해보고자 한다.그녀는 십여 년 전 혼자 마라도로 떠났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섬이 맺어준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장면 집을 운영한다. 이러한 사연을 나는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텔레비전 프
일반칼럼
박정애
2019.08.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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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초여름의 천변 산책로에는 우유 판촉전이 진행 중이었다. 다른 계절에는 뜸하다가 여름만 되면 여러 우유 회사의 판촉 사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판대를 설치하고 우유 홍보에 열을 올리곤 했다. 판촉 사원들마다 공짜 우유를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번 기회에 아들한테 최고의 우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판촉 사원들에게 이것저것 깐깐하게 캐물었고 그 결과 몇 가지 전문적인 지식까지 알게 되었다. 고온 살균보다는 저온 살균 우유가 신선하다는 것, 맛이 고소하다는 것은 풀이 아닌 옥수수 사료를 더 많이 먹인 증거라는 것.나는
일반칼럼
박정애
2019.07.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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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인덕션 위에선 구수한 된장국이 끓고 있고 에어프라이어에선 기름진 고등어가 구워지고 있다. 씩씩거리던 전기밥솥은 힘차게 김을 쏘아 올린다. 그 사이 김치 냉장고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를 꺼내 썰고 어제 먹다 남은 계란말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주방을 가득 채운 열기에 목이 마르다. 정수기 버튼을 눌러 미온수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저녁 준비가 한창인 주방의 풍경은 가족을 향한 주부의 사랑과 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전기로 가득 차 있다.비단 주방뿐이랴. 이젠 세탁기를 넘어 건조기에 빨래를 말린다. 청정한 공기마
일반칼럼
박정애
2019.06.0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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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칼럼=박정애] 자식을 낳고 고민의 결이 바뀌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세상에 이렇게나 혼을 쏙 빼놓는 존재가 있을까. 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 사랑스러운 아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전의 관념적이고 낭만적인 사고체계에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엄마가 된 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중에 제일 먼저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바로 푸드(food)였다.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 것인가? 음식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올바른 식재료에 대한 탐구와 추적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반칼럼
박정애
2019.05.09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