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지극히 합법적으로 무너진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그러했다.’20년 넘게 민주주의가 붕괴한 나라들의 공통점을 연구한 하버드의 스티븐 래비츠키 교수가 저서 에서 내린 결론이다. 그는 1900년대 초중반의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그 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아르헨티나의 페론 부부, 21세기의 푸틴과 도널드 트럼프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스트들의 공통점을 연구했고 그들의 연설 속에서 몇 가지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민주주의 선거와 언론에 대한 불만,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부정,
“일본은 거듭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다... 전쟁과 상관없는 다음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아베)“나치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에 한도를 정할 수 없다... 역사를 학교나 사회에서 전파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역사적 책임이 있다.” (메르켈)201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70년을 맞이한 아베와 메르켈의 연설을 들여다보면, 두 전범국의 서로 다른 역사관이 뚜렷이 대비된다.아베에게 역사란 ‘작은 점’ 같은 것이다. 물건을 사고팔 듯, 계약서 몇 장으로 깔끔하게
[청년칼럼=이성훈] 인류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을 꼽으면 아마도 삼국지일 것이다.한반도에서는 삼한의 태동이 꿈틀거리던 시절, 중국 대륙에서는 유비, 조조, 손권이라는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 수 천 년 지난 역사가 동양에서는 ‘삼국지’, 서양에서는 ‘Three Kingdoms’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영화, 게임, 만화로 변주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역사란 것이 교과서처럼 분석해 들어가면 ‘노잼’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꿀잼’ 콘텐츠가 된다. 버전도 다양해서 펙트기반의 덤덤한 정사 삼국지가
[청년칼럼=이성훈] 지난 4월 16일, 세월호 기억교실을 찾아갔다.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지겨웠다. ‘세월호’, ‘4월16일’ 그리고 노란 리본이란 단어가. 뉴스에서 너무 많이 보고 들었다. 유튜브 속에서 조명하는 세월호도 마찬가지여서 복사해서 붙인 듯한 뉴스영상들에 나는 무뎌졌고, 이미 볼 것 다 봤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 질리기 전에 만나보고 싶었다. 직접 안산을 찾아가면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경기도 안산의 ‘4.16 기억교실’을 찾아갔다. 지하철 차창 밖으로 새하얀 벚꽃나무들이 마지막 꽃잎까지 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동물구호단체에서 일하는 탓일까.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오며 유독 시골 개들이 눈에 밟혔다. 개들은 태생적으로 주인과 강한 애착을 형성하며 자유롭게 산책하길 즐긴다. 그런데 짧은 목줄에 묶여 추우나 더우나 밥그릇만 끌어안고 사는 시골 개들의 모습은 참 딱해보였다. 흔한 시골 풍경이라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그중 8kg 남짓한 아기 리트리버가 기억난다. 유독 어리고 꼬질꼬질한 개라서 그랬나보다. 녀석은 택배트럭 하치장에 홀로 묶여 있었다. 생후 4~5개월 남짓한 수컷인데, 아직 젖니도 채 자라지 않았다. 녀석은 초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지난 주, 구호활동을 위해 경기도의 대형 개농장을 찾았다. 현장은 매우 처참했다. 철창에 갇힌 개는 총 206마리. 한 마리도 빠짐없이 심각한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털이 반은 뭉텅 빠질 만큼 심한 피부병은 기본이고 탈장에 항문염증, 지독한 눈병에 눈알이 튀어나온 개도 흔했다. 소독약을 치는 인부가 연거푸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린다, “인간은 정말 천벌을 받을 거여. 이게 뭐가 몸에 좋다고 먹어?” 휴대폰도 먹통인 외딴 산골에 뜬장 50여 개가 놓였고 그 안에는 200마리 넘는 개들이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이번 겨울은 스포츠 볼거리가 풍성하다. 시속 130km를 넘나드는 스켈레톤 썰매의 가속도, 2M 가까운 장신들이 덩크슛으로 골대를 강타하는 남자프로농구의 호쾌함까지, 스포츠인들의 퍼포먼스는 국적, 성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스포츠를 스포츠 그 자체가 아닌, 무언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외교적 수단이라는 명분, 혹은 국위선양의 기수라는 이름까지, 스포츠는 다양한 ‘쓸모’를 요구받았다. 여성 아이스하키팀은 ‘남북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10살 때 쯤, 우연히 TV에서 일본 다큐를 봤다. 그 다큐는 일본 초등학생들을 위한 체험농장 이야기였다.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처럼, 소들은 넓은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뛰놀았고, 돼지들은 진흙에서 뒹굴고, 닭들은 마음껏 모래를 쪼았다. 아이들은 그런 동물들과 어울리며 즐거워했다. 슬픈 장면도 있었다. 동물들이 도축되었고, 아이들은 농부와 함께 그 모습을 바라봤다. 동물들은 마취된 상태에서 단숨에 목숨을 잃었고,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도 울었다. 지금도 그때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였다.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며칠 전, 급히 과외를 가던 날이었다. 밥을 주던 냥이가 죽었다. 녀석은 바닥에 누워있었다. 빨간 카펫 위에 누운 듯, 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토바이? 아니 어쩌면 자동차에 치인 것 같았다. 마음은 아팠지만 가던 길을 갔다. 과외에 지각하면 월급 입금날짜가 미뤄지는 걸.전부 거짓말 같았다. 녀석은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주던 사료를 맛있게 먹었다. 2kg에 8900원 밖에 안하는 싸구려 사료였지만, 평소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척이던 녀석은 맛있게 먹어줬다. 녀석은 영락없이 고등어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얼마 전, 한 언론사가 올린 소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지하철 경찰대가 이른바 ‘몰카범’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영상인데,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범인이 아니라 경찰관의 태도였다. 영상 속 경찰관은 “남자가 실수를 했으면 반성하라”, “남자답지 못하다”며 범인을 면박 주었고,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면서 “그렇게 아세요잉”, “목격자가 좀 많아요잉”이라며 장난스런 말투를 썼다. 익살스런 편집방식을 보건대, 제작자 또한 당시 상황에 무감각한 것 같다. 하지만 수천 개의 댓글들은 ‘경찰의 태도가 마치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지난 3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떼인 청년들의 제보를 받고, 노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돈을 되찾아주는 기획이었다. 증거확보를 위해 녹음기를 켜고 직접 ‘악덕사장’과 대치하느라 진땀을 흘린 적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보자는 피씨방 알바 재현(가명)이었다. 그는 월 매출 2000만원을 찍는 큰 피씨방에서 지각 한 번 없이 일했는데, 사장으로부터 게으르다, 태도가 불량하다는 구실로 80만원 넘는 월급을 못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2017년 7월 28일 오전 8시. 인천공항의 D게이트를 통과하며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1년 장거리 연애가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었다. 딱히 그녀를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영상통화로 매일 봤으니까. 다만 우리는 서로를 ‘만지고’ 싶었다. 나는 꽃다발을 건네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풍성한 흑발은 밝은 금발로 물들었고, 품에 쏙 들어오는 걸 보니 한국에 있을 때보다 살이 빠졌다. 어쩐지 낯설었지만 익숙한 이 체취만큼은 그녀의 것이 틀림없었다.연인의 군입대, 유학, 지방발령 등이 잦은 2030세대에게 장거리 연애는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두 달 만에 찾은 고향은 아늑했다. 그리웠던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동안 서로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빠와 엄마의 순조로운 인생2모작 이야기,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 준비를 착착 해나가는 나의 이야기가 오가며 웃음꽃이 피었다.그런데 서울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 문제였다. ‘꽃중년’ 엄마가 갑자기 ‘아침드라마’ 속 낡은 어머니로 돌변했다. 혼자 사는 아들이 걱정된다며 새벽3시까지 반찬을 한가득 요리하고, 그 고단한 가사노동 속에서도 틈틈이 ‘차 조심
주위에 ‘쟤 미쳤어?’ 소리를 듣는 친구들이 있다. 유명 대기업, 철밥통 공기업, 메이저 언론사에 취직해 ‘꽃길’을 걷고 있지만 새롭게 이직을 꿈꾸는 20대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낸 직장을 왜 떠나려는 건지, 속사정을 들어봤다. 1. 공기업, A친구 A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가입한 언론고시 동아리에서였다. 아나운서를 꿈꾼 A는 전현무 같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보다는 손석희처럼 시사문제를 깊이 전달하는 ‘앵커맨’을 동경했다. 열심히 준비하던 그였지만 집안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다.
미디어 스타트업 를 운영한지 8개월이 지났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물심양면으로 지탱해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 덕분에 차오르는 나이와 취업의 유혹을 이 악물고 이겨낼 수 있었다. 이 같은 정신승리에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돈’ 문제다. 대체 어떻게 하면 콘텐츠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틈틈이 투잡을 뛰는데, 언제쯤 콘텐츠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2~3년을 꾸준히 버텨야 해요. 그 괴로운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 그게 제일 어렵죠.”어느 술
모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대선주자검증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질문자: 적폐대상은 꼭 제거하겠다고 하시던데요? 이재명 지원자의 발언을 들어보면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이 엿보입니다.이재명: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청산하고자하는 상대는 우리사회의 불법적 요소들입니다.질문자: 선악의 구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너무 단순하게 나누는 것 아닌가요?이재명: 선악이 아닙니다. 저는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구속되는 게 맞습니다. 힘과 권력을 가졌다고 예외 취급을 하면, 억울하거
“여보세요? 아 쌤, 오늘 수업 안하셔도 될 거 같아요. 저 가출했거든요.” (고2 남학생)“엄마 언제 퇴근하냐구요? 저희집 이혼했어요. 저희 아빠 이혼만 세 번 했어요.” (고1 여학생)“저희 아빠요? 저 15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엄청 슬펐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고3 남학생) 함께했던 청소년들이 직접 들려준 이야기다. 두 부모 아래서 ‘범생이’처럼 살아온 나에겐 매번 놀라운 내용이었고, 어찌 반응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 가출했다는 아이를 직접 찾아가 좋아한다는 돈까스를 사 먹이며 달래고, 곁에
사실 군대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남성의 특수한 경험이라 대다수가 공감하기 쉽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무용담, 고생담 등 소재가 뻔해서 지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동안 다행스럽게도 한 가지 교훈을 건졌다. 그것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재벌3세의 폭행사건’ 등을 이해하는데 꽤나 유용했다. 부득이 군대 이야기를 꺼내본다. 군복무 시절, 나의 막내생활은 유독 길었다. 8개월 동안 물주전자 나르기, 청소, 파견훈련 등 온갖 잡일을 떠맡았다. 선임들은 바쁜 나를 옆에 두고 빈둥거렸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영화 ‘판도라’ 말이다. 솔직히 말해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재난영화였다. ①지진이 발생하고 ②원전이 폭발해서 ③수백만명이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몇 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구경’하면서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만 보면 ‘판도라’는 별로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줄거리에 우리의 현실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현재 한국에는 24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한국은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올해 동남권에는 진도 6.0 가까
“야, 너 내일 광화문에 나오냐?”“응, 선배랑 동아리 애들 다 같이 나간다.”“그래, 몸조심하고. 난 출동한다. 까라면 까야지.”2008년 이른바 ‘한미 밀실FTA’, ‘광우병 소고기’에 반대하는 집회를 앞두고 대학친구 A와 나눈 통화였다. 당시 A는 의무경찰로 복무 중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친구가 친구를 막아 세운다는 그 상황이. A는 진지한 친구였다. 다들 술 마시고 여자친구 만나느라 바쁜 와중에도 녀석은 도서관에서 신문을 읽었다. 친구들이 미팅이나 소개팅을 나갈 때도 A는 크고 작은 시위를 찾아다녔다. 그랬던 A가 이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