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하늘은] 영화 기생충(봉준호, 2019)은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의 위대함에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박수를 보냈다. 나 또한 박수를 보태기 위해 얼마 전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관람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부자와 빈자의 일상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낸 드라마다. 빈자의 움직임, 표정, 냄새, 그리고 부자의 걸음걸이, 말투, 소품. 131분간 쏟아진 콘텐츠의 핵심은 ‘디테일’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땅의 모든 관람객들을 만족시키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일까
[청년칼럼=최미주] 종이컵 두 개와 실로 전화기를 만들어 본 적 있나요? 종이 끝에 구멍 뚫고 실을 연결하면 간단하게 전화기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종이컵 한 짝은 내 귀, 나머지는 친구 입에 대고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후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합니다. 짓궂은 친구가 손으로 실을 잡아 전달을 막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친구의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함께 노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실을 잡은 친구가 히죽히죽 웃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친구와 유선 이어폰 한 짝씩 나눠
“쌤, 이거 왜 배워야 하죠?”25년 전 내 질문에, 선생님은 대답했다. 다 배워보면 알 거라고, 나이 들면 알 거라고. 그러나 그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서도 모르겠다. 수학은 수능 직후 인수분해 되었고, 나는 시는커녕 소설도 감상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내 학생들도 그 시절 나처럼 물었다. 나는 이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대학가려고.”짧막한 한 마디면, 학생들은 납득했다.“꼬우면 자퇴하고 엄마한테 건물 하나 사달라고 하든가.”쐐기를 박았다. 학생들은 꼼짝하지 못했다. 인성교육, 전인교육은 말뿐이었다. 내 선배들의 시절부터 지
“태어난 게 목적이야. 목적을 다 했어.”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럼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시간은 뭐냐고? 신이 우리를 예뻐해서 우리한테 윙크를 하면서 보내준 보너스 게임이야.”소명, 어떤 쓰임새…그런 말보다 태어난 게 목적이고 우린 그 목적을 다했다는 것.처음 들어본 어법이었다. 굉장히 신선했다.그는 “언제부터인지 주위에 ‘다 됐으니깐 아프지만 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가 청년들에게 아프지만 말고, 오늘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곤 했었다.뮤지션, 논객, 그리고
[청년칼럼=이루나]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고 건대 입구로 향했다. 다음날 공휴일이라 인근 술집은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기름진 삼겹살 냄새와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캠퍼스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을 건너뛰고 발길을 재촉한 덕분에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한적한 캠퍼스 분위기와 달리 지하 공간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어수선했다. 출발 시각이 임박한 공항의 여행객들처럼 한 옥타브 올라간 재잘거림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서둘러 티켓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큰 박수와 함께 반 백발의 강연자가 등장했다. 유홍준 선생님과의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려 한다. 곡은 이미 나왔다. 그런데 멤버 하나가 부족하다. 원래 있던 기타리스트가 베이스를 치겠다고 하니 기타를 쳐 달라.’이런 부탁을 받았는데 거절했다. 오랫동안 기타를 안 치기도 했고, 주야장천 펑크만 해서 다른 장르는 쳐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난 매정하지 못했다. 곡을 쓴 친구에게 빚이 있었다. 몇 년 전 무대를 함께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얼마 앞두고 간 락페스티벌에서 뛰어놀다 다리가 부러져 펑크를 내버린 것. (▷관련기사: 오른발잡이의 왼발훈련기)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기에 급히 입을 막았
[청년칼럼=시언] 내가 사는 ‘관악구 고시촌’에는 토킹바(Talking Bar)가 많다. 다른 동네에선 동에 하나도 찾기 힘들지만, 이곳엔 한 블록당 몇 개씩 있기도 하다. 바들은 주로 오후 10시쯤 가게 문을 여는데, 새벽 4시 장사 종료 전까지 2~30대 남자들이 하나 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고객들은 젊은 바텐더들과 맥주나 양주를 사이에 둔 채 대화를 나눈다. 터치 등 퇴폐적인 요소는 없다. 물론 바텐더들은 대부분 가명을 사용하며 근속 기간도 짧다.하루는 예비 취재 차 바 2~3곳을 돌며 바텐더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녔다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그레이 크러시! 걸 크러시는 들어봤지만, 그레이 크러시는 어쩐지 좀 낯설다.최근 멋쟁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늘어나면서 ‘그레이 크러시’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걸 크러시(Girl Crush)’가 어떤 여성을 동경하거나 선망하는 마음을 일컫는다면, ‘그레이 크러시’는 멋진 시니어 라이프를 영위하는 사람에 대한 찬사와 응원을 가리킨다.‘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는 말과도 맥이 닿아 있다. 머리가 세거나 노인을 의미하는 ‘그레이(Grey)’와 전성기,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
[청년칼럼=김동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지난 1995년 검찰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며 내세운 논리였다. 이 말은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심지어 국가에 반역 행위를 해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는 실제로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건 상식 수준이었지만 그는 대통령이었고 검찰은 면죄부를 줬다.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정권 교체가 되자 그는 똑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때의 검찰은 틀렸고 지금의 검찰은 맞는 것인가.성공한, 혹은 성공할 가능성이
[청년칼럼=허승화]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을 갖고 있겠지만, 무엇이 나를 위로하는지 알아야 조금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다. 과연 사람을 위로하는 건 무엇일까. 한마디 말? 한 그릇의 밥? 한 잔 술? 한 번의 여행? 아니면, 한 권의 책? 내게 위로는 십 대 시절, 나는 지금보다 오만했다. 당시의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에 대해서 알러지가 있었다. 누군가의 소설을 읽고, 혹은 어떤 영화를 보고 위로를 느낀다는 말을 비웃
[청년칼럼=김연수] 4년간 미우나 고우나 함께해온 전공을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졸업을 앞둔 현재 내가 날마다 하는 생각이다. 전공을 버리면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겁이 나기도 한다. ‘성공적인 취업’이란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점 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4학년이 되어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인지해버렸고 마냥 빠르게 흐른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진로를 정하고 앞서 나아가는 동
[청년칼럼=김우성] 나는 기억력이 좋다. 특히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한다.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인지해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상대방의 이름을 부른다. “OO아 안녕!”이라고 반갑게 인사 건네면 상대방도 밝게 화답하고는 한다.학교 테니스 동아리에서 졸업하신 선배님들을 초대해 함께 운동하는 ‘OB전’을 준비하고 있다. 30년이 넘은 전통 깊은 동아리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선배님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선배님 명단을 보니 100명이 넘었다. 나를 포함한 임원 다섯 명은 단체 문자를 작성했다
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나는 용감해, 나는 상처받았지만, 내가 원하던 모습이야. 이게 나야. 영화 에서 나오는 OST, ‘This is me’의 가사 일부다. 영화는 가난한 신분이었던 주인공 휴 잭맨이 (서커스를 열어서)성공한다는 것과, 욕심으로 인해 재정적, 관계적 위기를 겪지만 다시 (서커스 단원인)동료들에게 용기를 얻어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다.생각보다 흔한 이야기였지만 화려한 연출과 하나도
[청년칼럼=고라니] 공포의 합평회 날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벚꽃 날리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시를 읽는 낭만을 기대하며 문학회 문을 두드린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문학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자 써 온 시와 소설, 에세이를 공유하고 감상평을 나누곤 했다. 말이 좋아 합평회지, 한 마디로 씹고 뜯고 맛보는 자리였다.평가는 잔혹했다. 짝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쓴 누군가의 시는 “이런 건 니 페이스북에나 올려”라고 평가받았고, 어떤 선배가 한 학기 내내 쓴 단편소설은 라면냄비 받침으로 쓰면 딱 좋겠다는 소리나 들었다. 나도 용기 내서 한
[청년칼럼=최미주] 교원 연수에 간 친한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수원에서 내 중학교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둘 다 나와 친분이 있을 뿐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생님을 어떻게 알아봤단 말인가?사연은 이랬다. 연수원에 온 선생님들이 소속 학교, 과목, 이름을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렸단다. 혹시나 했는데 전공이 음악이라는 걸 듣는 순간 확실하다 싶어 그분께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언니한테 중학교 은사였던 선생님 관련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었나?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최근 들어 각자 바삐 살던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들이 모이게 됐다.운동 잘하던 놈, 공부 잘하던 놈, 순하게 생겼던 놈, 어른스러웠던 놈, 개구쟁이였던 놈 등등! 이들을 수년 만에 만난 것이다. 같은 반이었다 보니 자연스레 담임 선생님 이야기도 나왔다. 선생님 휴대전화 번호도 건네받게 되었다.친구들 모두 선생님을 한번 뵙고 싶어 했으나, 그간 연락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번호를 저장해두었고, 또 시간이 흘렀다.그러다 우연히 선생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
[청년칼럼=김봉성] 스승의 날 크고 작은 선물을 받으면 민망하다. 나는 스승이 아니다. 잘 봐주면 선생이고, 실체는 강사다. 강사, 선생, 스승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5월 15일이 불편하다.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제자’로 지칭하지 않는다. 강사-수강생, 선생-학생, 스승-제자로 대응되는 언어 감각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제자가 되면 나를 스스로 스승으로 지칭하는 것 같아 낯뜨겁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은 내 언어 감각에 실소했지만, 개인적으로 꽤 견고한 생각이어서 스스로에게 ‘제자’는 금기어였다. 사교육 강사 주제에 스승은
청년대표 울고 4월 1일 전국청년네트워크 대표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청년의 삶 전반을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 정책은 행정실무에 빠져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쏟았단다.오늘은 정말 우울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고 한다.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들으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요즘 뜨거운 이슈인 청년구직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다. 청년구직지원금을 집행할 때 중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행정실무나 규정이 아니라 구직자 개개인의 사정이 되
[청년칼럼=심규진] 평생 원망했던 아버지. 어린 시절, 좋은 기억보다는 무수한 안 좋은 기억 속에 가려진 나의 아버지. 술을 드셨고, 가정을 내팽겨 치셨고, 결국 경제적 능력까지 상실한 육신의 아버지. 이제 그는 노인의 되어 거동이 불편하다. 연(緣)을 끊고 지낸 세월이 후회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분노의 앙금이 부모-자식 간 관계의 줄기를 연하게 만든다.내 자식이 태어나고 부모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할 때쯤, 다시 손을 내밀어 왕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빠듯한 살림에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오히려
[청년칼럼=서은송] 20대가 이런 삶일 줄 알았더라면, 조금 늦게 맞이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학창시절 나는 스무살이 되면 완벽하게 행복할 거란 착각을 매일 하곤 했다. 물론 지금에서야 ‘착각’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당시 이십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스무살이 되고 괜찮은 추억들이 많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틈에 여러 연인도 만났었다. 흔히들 청춘이란 연애의 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편견을 깨고 똥파리를 만났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청춘이 아팠던 것은 20대가 되면서 사람을 잃는 법을 터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