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모름지기 결과(結果)를 낳게 하는 것이 인(因)이며 그 인(因)으로 생긴 것이 과(果)이다. 이 세상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이치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느끼곤 한다.중국의 근대사는 실로 참담하다. 세계의 중심 국가로서의 위용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오늘의 중국인들이 느끼고 있을 절치부심(切齒腐心)과 서구 세계에 대한 응어리를 짐작할 만 하다.1840년, 역사상 가장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평을 듣는 영국과의 2차에 걸친 ‘아편전쟁’으로부터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2000년대 초 나는 모 기업 중국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 지사장으로 있었다. 칭다오 지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한국의 석유화학제품을 중국 시장에 파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지사는 본사로부터 합성섬유의 원료가 되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의 판매처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원료를 사용해 실을 뽑아 직물을 짜는 중합(重合)공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우연히 산둥성의 한 시골에서 막 신설 중인 공장을 발견하게 됐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그 공장이 향후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한때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지금도 그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은 틈나는 대로 ‘중국발 해양위협’에 대해서 특집기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이어도를 관할 해역으로 규정하고 정기 순찰대상에 포함시켰다. 2012년 9월 첫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취역시킨데 이어 현재 자체기술로 핵항공모함을 건조중이라고 한다.모름지기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법, 중국이 급성장한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해양대국으로 진출하려는 꿈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대가 영웅을 만들면서 또 한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최근 대기업의 고문으로 1년간 베이징에서 생활하다가 막 귀국한 선배를 만났다. 그는 대만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중 수교이전인 1980년대 말부터 늘 한중 교역의 선봉에 서 있던 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 중국에서의 활약상을 기대한 나에게, 그는 중국이 옛날의 중국이 아니더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는 것이 인색해지고 매사에 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없어도 인간미 넘치던 시절은 이젠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1988년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가 우리에게 대륙 방문을 허용하면서 홍콩의 주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변화에 대한 여러 정의 중에서 나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것에 가장 공감한다. 그는 ‘미래가 우리 생활에 침투하는 과정’이 변화라고 말했다.1987년 4월 홍콩 지사로 부임한 나의 가장 큰 미션(Mission)은 중국과의 직교역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모든 것을 은폐하고 있었던 소위 ‘죽(竹)의 장막’은 적어도 우리 당대(當代)에는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만리장성이나 상하이 임시정부 같은 얘기들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치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갈라진 땅보다 농부들의 가슴이 더 갈라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요즘이다. 물과의 전쟁은 동서양과 고금을 가리지 않는다.중국의 역사에서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절이 있다. 요순지절(堯舜之節)이라고 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늘 동경하는 전설의 시대다. 이처럼 이상적인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타들어 가는 가뭄과 대홍수로 인한 하천의 범람은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쉽게 들어 온 떡은 다시 한 번 봐야 한다. 좋은 건 절대로 나에게 그냥 오지 않으며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중국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현장에서 직접 투자 법인을 관장하는 책임자들에게 ‘그 동안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을 얘기해 보라’고 하자 대부분의 법인장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다. 일견 좋은 조건으로 보였던 것이 나중엔 결국 딴말을 하더라는 것이다.내가 다니던 회사는 종합상사로서, 그 동안 한국산 제품을 중국 시장에 팔거나 중국산 제품을 미주나 유럽 시장에 수출하는 단순 무역에 의존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저는 술을 못해서 중국 사업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사석에서 만나 중국 시장에 대해서 얘기하던 중, 중국 시장에 관심은 있으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사업가가 털어놓은 말이다.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하면 술을 떠올리고, 그래서 술이 중국 사업의 모든 것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후배는 중국 주재원으로 내정됐으나 주량에 자신이 없어서 모처럼 찾아 온 기회를 포기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술을 잘 마시기 때문에 중국에 적임이다’라는 말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이젠 내가 백(白)을 잡아야겠지?’ 바둑 두 판을 내리 진 나에게 상대방인 중국 친구가 내 앞에 있던 백돌을 거침없이 자기 앞으로 가져가며 한 얘기이다.그는 당시, 나와 가장 많은 거래를 하고 있던 철강 회사의 회장이었다. 지금은 정계(政界)로 진출해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서로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각별한 바둑 친구가 되었다. 나도 바둑을 좋아하지만 그는 정말 바둑 광이어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바둑으로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바둑실력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中國이야기] 중국에서 기차를 타 보면 중국이 참 넓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내가 중국에서 기차를 처음 타 본 것은 1989년 베이징에서 칭다오로 가는 길이었다. 당시 우리는 항공편 연결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 기차로 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는데 그래서 열차 편 중에서는 가장 빠른 터콰이(特快:특쾌)를 예약하게 됐다. 당시 17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이징에 있는 거래선은 배려 차원에서 우리 일행이 3명이었는데도 1사람 분의 기차표를 더 사서 4인용 한 칸을 전부 쓸 수 있도록 해줬다.기차가 출발한 지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中國이야기]1988년 중국이 한국에 정식 비자 발급을 시작하면서 당시 홍콩 지사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자주 중국을 드나들게 됐다. 중국 대륙의 개방은 우리에게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가져다줬고, 우리는 중국 전역을 빠뜨리지 않고 돌아다녔다.이때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지역 간 이동이었다. 물론 주로 비행기를 탔는데 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당시 국내 여객선 중에는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나 구 소련제 항공기가 많았는데 비행기 천장에서 녹물이 떨어진다거나 비행기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일은 다반사였다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 ‘중국에서 룰을 깨면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중국에서 룰만 고집하는 사람 또한 살아남기 힘들다.’ 중국-유럽 합작 비즈니스스쿨인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의 존 켈치 학장의 말이다.우리는 흔히 중국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명쾌한 가이드 라인 대신 두루뭉슬한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같은 사안이라도 그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모든 것이 일정한 룰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서양 사람의 눈에는 룰을 깨어서도, 그렇다고 깨지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中國이야기]중국을, 비디오 없이 바로 DVD로 넘어간 사회라고 말한다. 비디오는 고사하고 TV도 없던 시절에서, 개혁, 개방이라는 눈을 뜨고 경제적인 성과를 누릴 수 있었을 때에는 이미 비디오 시대는 가고 DVD의 시대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잃어버린 100년의 고통스런 근현대사를 살면서 중국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아픔이 잠재되어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자각이, 중국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신 중국(新中國)’ 개념의 배경이 되고 있다. 1949년 공산 혁명을 통한 건국이 정치적 관점의 ‘신 중국’이라면 19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언젠가 모 일간지에 원로 국어학자의 말을 인용해 ‘한자(漢字)는 우리 글이다’라는 기사가 났었다. ‘한자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東夷)족이 만든 글자이며 중국 학계에서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데 우리만 모른다’라고 이 학자는 주장한 모양이다.이에 중국 네티즌들이 발끈해 ‘중국 문화는 왜 늘 한국에 당하는가’라고 하며 뜨거운 논쟁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특히 한국이 공자와 이백(李白), 서시(西施: 춘추시대말기 월나라의 미인)등 유명인의 국적과 활자인쇄술, 혼천의(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오피니언타임스]칵테일파티나 잔칫집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있을 때, 무심코 있으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얘기는 신기하게도 내 귀에 들리는 것, 심리학에서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도 하는 이것이 칵테일파티 효과이다.중국 북송(北宋)시대에 문동(文同)이라는 문인이자 화가인 사람이 있었다. 자는 여가(與可)로 인품이 고결하고 박학다식하며 시문과 글씨, 특히 대나무 그림(竹畵)에 뛰어나 후세에 묵죽(墨竹)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평소 그를 가까이하며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일정기간 기여하다가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이나 직장 생활을 언젠가는 그만둬야 하고, 이는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조직이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비록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나 그렇다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무릇 높은데서 떨어지면 더 아픈 것처럼, 소위 한 때 잘 나가고 대단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더 자리에 연연하고 애착을 가져 주변의 눈살을
모름지기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이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일반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3대 간신을 꼽으라면 당의 이임보(李林甫)와 남송의 진회(秦檜) 그리고 명의 엄숭(嚴嵩)을 꼽는다.이임보(李林甫:?~752). 호는 월당(月堂). 산시(陝西:섬서) 출신. 당나라 현종 말기 별다른 학식이나 재능 없이 오직 아첨으로 재상에 올랐던 인물. 황제의 신임을 배경으로 전권을 휘두르며 조정의 기강을 크게 문란케하고 신료들이나 백성들의 충언이나 간언이 황제에게 전달되
언젠가 신문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글을 쓸 때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史馬遷)을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열정을 바쳤다고 생전에 술회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의 굴곡 많았던 인생을 가슴에 품고 강원도 땅에 홀로되어 한 줄 한 줄 원고지를 메워 나가는 쓸쓸함과 고됨을 사마천(史馬遷)의 절박함에 비교한 것을 보고, 선생의 한(恨
세월이 지나면서 토론 문화도 변해간다. 서로의 입장을 봐가면서 상대방을 치켜세우기도 했던 그동안의 토론 문화는, 이제 보다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세태를 반영했음인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의견을 달리하는 복수의 전문가가 배틀 형식으로 맞붙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청중 또한 듣기만 하지 않고 토론 전후에 태블릿 PC로 전자투표를 해 토론자 의견에 대한 찬반을 표
최근 만리장성을 다녀왔다. 학생들과 같이 베이징 일대를 견학하는 프로그램에 동행했는데 대부분이 중국 초행길이라 만리장성은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행을 따라 나섰다. 사실 만리장성은 90년대 초 베이징 지사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손님들을 모시고 거의 매주 가야만 했던 곳이었다. 따라서 만리장성을 간다는 것은 거의 고역에 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