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이하연] 비상사태다. 마스크, 손 소독제는 물론 약속까지 다들 사라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단 한 달 전이다. 한 달 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이제 마스크는 피부처럼 느껴지고 김 서린 안경으로 제법 앞도 볼 줄 알게 됐다. 어쩌다 보니 호흡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코로 천천히 하나 둘, 하나 둘…. 가다듬은 호흡만큼 행동반경도 좁아졌다. 외식과 만남을 최소한으로 유지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0으로 수렴 중이다. 회사에서 원격근무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눈을
[청년칼럼=이하연] 잘만 썼던 물건이 갑자기 싫어질 때가 있다. 손이 안 간다거나, 보고 싶지 않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싫다. 대표적인 예로는 헤어진 애인이 준 선물이 되겠다. 처음 선물을 받았을 때, 그들은 나에게로 와 꽃만 되었겠는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서 펄쩍 뛰기도 했고,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 선물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것들을 품에 안았다. 늘 곁에 두다 보니 어느덧 선물은 ‘잘 쓰는 물건’이 되어있었다.2년을 동고동락했던 분홍색 나이키 운동화는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나는 매일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늘 미안함을 느낀단 얘기다.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묻는다면, “난 예민함과 잘 맞는 것 같아.”라고 대답하겠다. 데리고 가야 할 동반자이므로. 실수에 대한 과거의 내 대처법은 “도대체 왜 그랬어?”였다. 아주 민감하게 굴었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는 어디 한 번 해봐 식의 투. 과거를 부정하고 비난해봤자 내 손해고 시간 낭비인데. 완벽에 가까워지고 싶었던지 무리해서라도 실수를 복원했고, 안 될 일은 곧 죽어도 없다고
[청년칼럼=이하연]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가 생겼다. 아빠는 병상에서 내게 중고차를 덥석 사주더니 며칠 후 돌아가셨다. 누군가한텐 자동차가 시야와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가 된다던데, 나에겐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면허가 없으니까. 내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므로 어쩌면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히려 짐만 됐던 것이 사실이다.직장인이 연차를 마구 쓰면서까지 운전면허를 따기란 쉽지 않다. 연차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자동차를 끌
[청년칼럼=이하연]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눈길이 가는 게 생겼다. 다름 아닌 내 방 책장에 꽂힌 책들. 장르별로 분류해 놓지도 않았을뿐더러 꽂을 자리가 부족해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나의 소중한 책들. 정리된 꼬락서니를 보면 결코 믿기지 않겠지만 난 책장에 남아있는 책들을 아주 아낀다. 간직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므로.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여러 번 정독하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한 권 정도만 겨우 두 번 읽었을 뿐이다. 여태껏 나의 독서 습관은 그랬다. 한 번 읽으면 그게 끝이었다.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아 그 얘기는 하지 말걸.’ 약속이 지나치게 많을 때 종종 드는 생각이다. 많은 말을 하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경우, 말이 많으면 실수도 덩달아 늘어나는데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숙하기 때문이다. 말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해 위의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의식적으로 행동을 조절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만의 방법이다.먼저, 전반적으로 삶에 여유를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일과 돈과 술이 대표적인 세 가지다. 일을 줄여야 시간적 여유가 생긴
[청년칼럼=이하연]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환경이 이토록 빨리 바뀐 적이 없어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변이 낯선 것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더라.매일같이 출근했던 장소가 바뀌었다. 고민 끝에 다시 취준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이직을 준비했고 곧이어 성공했다. 전 직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공간이었다. 새로운 사람들 틈에 섞여 일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젖어들었다. 적응해야 할 것 투성이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동기들과 팀원들이 큰 힘이 됐더랬지. 여러분 고마워요.휴대폰을 샀다. 고장도 안 났지만 약정도 안 끝났었다. 늘 보급형 휴
[청년칼럼=이하연] 밥 먹고 산책하는 버릇이 있다. 소화시키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소화기능이 나쁜 편은 아니니 사실상 아무 목적이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거리를 배회할 뿐이다. 노래를 듣거나 흥얼거리지 않는다. 파편 조각처럼 흩어진 생각을 끼워 맞추지도 않는다. 문득 과거를 떠올리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회상이 민망하면 머리를 콩 쥐어박을 때도 있고, 망상이 지나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다. 그러다 시간이 다 되면 조용히 현실로 돌아온다.아침 산책은 목적은 없지만 목적지는 있다. 집에서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한 달 전부터 피아노를 배운다. 소소한 성취감을 느껴보려는 발악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감히 피아노 위에 양 손을 올려놓는 상상도 못했던 나였다. 매일 매일의 피아노 연습은 확실히 성취감을 준다. 한 발자국만 나아가도 실력 상승이다. 두 발자국을 나아가면 일취월장이란 평을 받는다. 그런 재미에 빠져 지금은 보란 듯이 양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춤을 춘다. 페달을 밟는 건 덤이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자 결심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었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지난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생애 첫 회사를 그만뒀다. 3개월의 수습기간만 채웠으므로 퇴사라고 말하기 애매하긴 하나, 어쨌거나 정규직 채용 조건으로 들어간 회사였다. 운 좋게 입사 한 달 만에 정직원 제안도 받았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사직서를 썼다. 퇴직 사유란에 “인턴기간 계약만료 및 이직”이라 적었다. 퇴사는 퇴사였다.고작 3개월이었다. 대단한 일을 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직장인의 삶을 아주 살짝 맛보았을 뿐이다. 월화수목금 아침 일찍 출근하고 8시간의 노동과 1시간의 점심을 보낸 후 늦은 저녁에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출근 3일차. 책 한권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라타 사야카의 . 좀처럼 사람들 틈에서 섞이지 못하는 기이한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란 가면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지켜야 할 언행을 모조리 습득하여 기계처럼 내뱉고 행동하게 된다.물론 나는 의 주인공처럼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달리 적당히 사회화가 이뤄져 모나지 않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이랄까. 여러 개의 가면을 적재적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눈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정상이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라 정의된다. ‘제대로인 상태’는 어떤 걸까. 그 기준이 워낙에 애매모호해서 무엇이 정말 ‘정상’상태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궁금증을 품을 사람이 비단 나뿐만 일까. 사전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본래 정상(正常)이란 단어 자체가 추상적인 뜻으로만 구성되었으니.손쉽게 한자풀이를 하자면, 항상 바른 혹은 바로 잡힌 상태란 의미가 된다. 이제는 ‘뭐가 바른 상태인 건데?’하는 생각이 든다. ‘바르다’는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을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셀프 서비스 시대다. 카페에서는 진동벨이 강력한 진동음을 내며 붉은 빛을 번쩍번쩍 발한다. 덕분에 아무리 시끄러운 카페일지라도 우리는 셀프 서비스를 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진동벨은 없지만 무음의 분리수거함이 떡 하니 버티고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테이블을 치우고 그곳으로 가 분리수거를 한다. 커피를 만드는 것 빼고는 입장부터 퇴장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한다.셀프 서비스는 이제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셀프 반찬대와 무인 주문기 등이다. 무인 주문기에서 주문과 결제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혼자서 발악을 하더라도 만들어지지 않는 게 인연이다.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참여해야 형성된다. 여기에 일종의 우연적 요소와 정성, 노력, 그리고 시간이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인연이 될 대상의 주변을 뱅뱅 돌지 않아도 ‘관계’라는 틀 안에 안전하게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에 이러한 조건들이 다 충족되는 경우는 드물다.인연의 필요조건으로는 단연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겠다. 인연(因緣)이란 어떤 사람 혹은 대상과 맺어지는 ‘관계’로 정의된다. 혼자서만 대상을 그리워하고 사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택배를 받았다. 상자 안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있다. 어쩌다 급박하게 이 책들을 주문했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직관적으로 재빨리 책을 선택하고 결제를 완료했다. 그러고 보면 늘 이런 식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당장 구매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돈까지 완벽하게 입금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완벽한 충동구매인 셈이다.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가 아니다. ‘이건 사야 돼’.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때가 되면 사리라, 하는 책들은 거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어쩌면 화해란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화해의 과정이야 복잡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화해하자”라는 말로 틀어졌던 사이가 원만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거기에 악수까지 청하면 금상첨화다. 짜증 섞인 말투로 서운함을 토로하던 이도 민망함에 어쩔 줄 모르는 이도, “사이좋게 지내자”는 누군가의 당찬 목소리 한 큐에 하나가 된다. 단, 이 규칙에도 조건이 하나 있다. 반드시 서운함을 내비쳐야 한다는 것이다. 10여년 넘게 친구관계로 지내온 이들이 있었다.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는데, 뭐랄까 살짝 어눌하면서도 서투른 듯한, 서울말이 아닌 사투리의 억양인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외국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괜히 시선이 가고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귀가 움직이지 않았겠지만 내 몸보다 더 빠르게 돌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것을 군중심리라고 하나. 신길역의 긴 통로를 질주했고, 이내 곧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경찰들이었다. 이유인즉슨 문자가 주는 힘 때문인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사실, 여행이라는 거 별거 없습니다. 굳이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행이 될 수 있죠.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도 낯선 곳이라면 혹은 익숙지 않은 곳이라면 충분히 설렐 수 있으니까요. 짐을 싸지 않아도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외국이 아니라 한국말들만 들려와도 좋습니다. 내 마음이 조금은 다르잖아요. 새로운 곳에 와서 평소와 달리 들떴고, 그런 마음에 주변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이런 것도 충분히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어느 순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