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논객에 글을 낸 게 8년 전이다. 청춘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공모전이 시작이었고, 현대문학에 흥미가 떨어지며 에세이, 웹소설, 독립출판 등으로 시선을 돌렸던 내게 좋은 기회였다. 냅다 글을 써서 투고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청춘이 뭔진 모르겠는데, 그게 술자리의 ‘짠’이라면 죽어도 못 준다 이놈들아!”인 글이었다. 수상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대학교의 과제도서실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내 머리에 꽃만 꽂으면 완벽해보일 것 같았는지 심히 수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던 후배들이 기억난다. 그리고 올해가 되면서 나는 스물 넷이 아
내게는 4살 터울의 누나가 있다. 게임 회사의 VFX아티스트로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직을 위해 블리자드에 면접을 보고선 합격했다. 해외 회사들은 면접이 굉장히 긴 편인데 다행히 HF팀은 누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마지막을 제외하곤 빠르게 면접 일정이 소화되었다. 다만 지금에야 이렇게 말하지, 1월 말에 누나는 내게 본인이 지원한 회사에 대해서 메시지를 보냈었다. “내 채용 담당 매니저 짤렸네. 왠지 이메일에 대답이 계속 없더라니.” 블리자드가 대량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미국은 정리해고가 결정되면 그 날 바로 짐을 싸고 나가야 할 정도
2022년도 2월말, 코로나에 걸렸다. 사실상 아주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백신을 2차까지는 맞은 상황이었고, 별 탈 없이 목만 좀 부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다시 멀쩡해졌으니까. 누나처럼 후각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지인처럼 2주를 앓아누운 것도 아니었기에 격리는 생각보다 답답한 일이었다. 1주일이 끝나자마자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운동을 나가고, 출근을 하고,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밥도 잘먹었고, 사람도 잘 만나고 다녔고, 차분히 이직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3주가 지났을까. 새벽 3시, 천식이
[오피니언타임스= 칼럼니스트 신명관]작년에 한창 논란이었던 덮죽덮죽 사건에 대해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백종원의 도움과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이 합쳐저, 포항의 한 음식점 사장님이 ‘덮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먼 프랜차이즈 하나가 덮죽으로 프랜차이즈를 만든 뒤, 상표를 등록하고 그 덮죽과 관계가 있다는 듯이 장사했다. 다행히 외식 사업의 정점에 백종원이 있었고, 백종원은 해당 문제를 인식한 뒤 덮죽의 오리지널을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데 힘쓰기로 했다. 2020년
[오피니언타임스 = 칼럼니스트 신명관]작년 6월, 맨 처음에 출근할 때에는 어차피 사장님이 아내분과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주 3일 출근이었다. 8시간씩 일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 근무도 해서 100만원 정도를 가져갔었다. 사장은 나와 꽤 오래 알고 지냈던 사이라서, 가게가 좀 더 안정화 되면 내게 맡긴 뒤 다른 가게 하나를 더 열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제안이 퍽이나 좋아보였기에 별 생각없이 받았다. 그리고 7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순간부터 가게는 조금 어려워졌다.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불매운동이 터
[청년칼럼=신명관]주문을 받아온 누나가 짜증을 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야끼니꾸(‘야끼’는 굽는 것을, ‘니꾸’는 고기를 뜻하는 일본어. 다시 말해 고기구이다)를 손님이 주문하는데 뭐냐고 물었다는 거다.단박에 귀찮은 진상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달랑 ‘야끼니꾸’라고만 메뉴판에 표기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옆에다가 메뉴에 대한 설명을 모두 집어넣은 상태였다. 고기 부위는 뭐고, 어떤 소스가 나오고,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까지.고기가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는데 애매하다. 삽겹살 구이는 무슨 맛이 납니까. 삼겹살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오늘은 요리잘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건데요. 요리 잘하는 방법. 저도 참 궁금하네요. 그럼 여러분 안녕~”블로그가 만들어낸 폐혜를 극단적 사례로 만들어놓은 드립이 화제다. 제목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뒤 막상 클릭해서 들어가보면 내용이 별 게 없다. 하지만 이미 클릭을 해버렸고 트래픽이 올라갔다면 포탈에서 계속해서 상위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블로그가 상위권에 노출되었단 사실 자체만으로는 솔직히 좋을 건 없다. 하지만 그 블로그가 광고를 받아 수입을 버는 공간이고, 왜곡된 정보로 혼란을 야기했다면
“제 메시지는 대통령님! 오로지 하나만 하시면 됩니다. AI. AI. AI.”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7월 청와대에서 한 말이다. 손정의는 국가 수뇌부들에게 자신의 안목을 믿고 AI에 투자해달라고 강조했다. 그가 아니더라도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이 하나같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외치고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은 머나먼 이야기 같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3년 전 전 세계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결투를 넘어, 지금은 스타크래프트에도 AI.
[청년칼럼=신명관] 필자가 일했던 파스타집은 2층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술을 같이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던 편이었다. 맨 왼쪽은 호프집 프랜차이즈가 치킨을 팔았고, 중간에는 간단한 안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맥주집 프랜차이즈로 메뉴에 치킨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20초를 걸어가면 치킨 전문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문을 닫기는 했지만 개인 치킨집이 하나 더 있었다. 세 개 매장의 메뉴 중에 치즈와 감자튀김 등등도 겹친다는 사실이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왜냐면 건물의 뒤편으로 가면 음식점이 또 있었으니까. 치킨
[청년칼럼=신명관] 배우 곽도원이 있다. 연극배우로만 14년을 활동하고, 말 그대로 배고픈 삶을 살다가 10년 전 즈음에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가수 현철이 있다. 내 세대가 아니라, 내 어머니 세대의 가수다. 1969년에 가요계를 데뷔했는데 83년에 트로트로 성향을 바꾸기 전까지 무명이자, 굶어야 했던 가수였다.코미디언 박나래가 있다. 12년정도의 무명이었다. 비호감 소리도 많이 듣고, ‘그렇게 하면 방송 못할 거’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트와이스의 멤버 지효는 연습생으로만 10년을 지냈다. 10살 남짓한 나이부터 학창시절보다는
[청년칼럼=신명관] “나도 OO나 해볼까”라는 소리는 자신의 현 상황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대기업을 다니지만 미래가 불명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공사판에서 노동직을 담당하고 있어 힘에 부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는 소리다. 그리고 ‘OO’은 주식이 되거나, 장사가 되거나, 사업이 되거나, 부동산, 혹여는 유튜브가 되기도 한다.다시 말해 그들은 직종 내지 환경의 전향을 희망하고, 자신의 현 상황에 불만족스러움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쪽이다. 음식점 하나 잘 해서 연 매출 10억원이 되었다는 사람, 주식투자 하
[청년칼럼=신명관] SNS에서 한창 논란이 된 사진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차려준 아침상을 두고 네티즌들에게 어떤지 의견을 묻는 거였는데, 게시글을 올린 남자는 평범하다고 말했고, 여자친구는 수라상이라 했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모든 댓글들이 여자의 편을 들어줄거라고 확신했다. 사진에는 데워진 햇반 두 개와 김치찌개, 떡갈비로 보이는 고기와 같이 튀긴걸로 보이는 마늘, 고등어구이, 계란말이, 김치 등이 놓여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니, 아침인데? 아침이라니까?요 근래 2
I am brave, I am bruised, I am who I'm meant to be. This is me.나는 용감해, 나는 상처받았지만, 내가 원하던 모습이야. 이게 나야. 영화 에서 나오는 OST, ‘This is me’의 가사 일부다. 영화는 가난한 신분이었던 주인공 휴 잭맨이 (서커스를 열어서)성공한다는 것과, 욕심으로 인해 재정적, 관계적 위기를 겪지만 다시 (서커스 단원인)동료들에게 용기를 얻어서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다.생각보다 흔한 이야기였지만 화려한 연출과 하나도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나는 별일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장기하 - 별일 없이 산다3년간의 우울증이 끝났다. 16,17,18년도를 갉아먹었으니 길고도 길었다. 내가 요즘 행복하게 산다고 하면 다들 말한다. “니가 조교가 끝나서 그래.”그렇게 말하는 이유야 알고 있다. 나는 학사조교를 하는 1년 동안 정말로 힘들어했으니까. 학기 초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벌어졌던 해프닝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일이 벌어지자 “그럼 진즉에 처신을 잘했어야죠”라며 내게 따지던 여직원, 별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날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누군가가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것과, 그런 누군가가 내게 익숙해져버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나는 상대방에게 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란 ‘뻔하다’는 감정이 들 때라고 보는 편이다.이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나를 대할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대할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상대방에게 별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매일 마주쳐야 하는 상대방이라면 우리들은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사람. 똑똑한 줄 알았더니 허당이네. 생각보다 게으르네. 옷 입는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새벽 두시 즈음인가. 친구의 사진을 보았다. 널따란 포도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유럽 가정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말했다. “나도 가고 싶다!” 친구는 금방 내 메시지를 읽고서는 답했다. “놀러오면 되지!” “그래!!”본래 여행을 싫어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여행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편이었다. 굳이? 내가? 거길? 왜? 힐링이라는 목적과 자기고민, 계발, 더 넓은 세상과 글로벌의……. 막 뭐라고 하는데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중간고사 잘 보는 팁’ 같은 것들을 보고 있으면 밤을 새는 건 지양하라고 한다.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건 더 피하라고 한다. 강제적인 각성 상태에서 흡수하게 되는 카페인은 사람의 판단력을 더 흐트러지게 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조차 제대로 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충분한 숙면을 추천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후배들은 열심히 박카스를 마시고 밤을 샌 뒤 시험을 치르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때부터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 “OO야, 괜찮아?” “에? 에에.” “밥이라도 먹을래?” “(고개를 저으며) 에에에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엄마. 예전 천둥치던 밤에 엄마 품에 안겨서 잤던 나를 기억해. 그때 나 진짜 어렸는데. 초등학교 6학년 형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보이고, 중학생부터는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나는 지금 대학 연구동에서 빨래를 돌리고, 과사무실로 올라와 빨래를 널고, 톱 때문에 세 바늘을 꿰맨 손바닥을 다시 한 번 소독하고 나서 쇼파에 앉았어. 7월이 오지 않은 여름은 아직 그렇게 덥지도, 답답하지도 않아.지금쯤 엄마. 엄만 아마 오른편으로 누워서 핸드폰으로 DMB를 보고있을 것 같아. 아니면 씻은 다음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친구들 중 유별난 둘이 있다. 실명을 밝히긴 어려우니 민우와 경재라고 해두자. 민우는 낯빛이 어둡다. 축 쳐져있는 어깨와 눈가가 딱 봐도 슬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생김새다. 살짝 뺀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채도가 없는 유행 지난 옷을 자주 입는데, 어딘가 책상을 가져다주면 엎어져서는 하루 종일 흐느끼며 옷깃을 적실 것만 같다.그가 매번 하는 말도 부정적이다. “난 끝났어. 난 끝났다고. 이제 죽어야지”를 되풀이했다. 뭐만 했다 하면 그 말을 달고 살았고, 덕분에 필름 끊기는 일이 잦았다. 자기가 기억하기 싫
“이것 좀 해줄 수 있어?”“줘.”“왜 해주는거야?”"해달라매?““아니…….”“싫으면 말고.”“아냐…….”별다른 이유 없이 날 미워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것도 아니고, 부탁한 것들을 내친 적도 없으며, 크게 나무랄만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도 그럴 때가 있다. 그 와중에 그들이 급해서 내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면 나는 또 잘 들어준다. 그럼 나를 더 미워할 거란 사실을 알고서도 해준다. 당신은 아마 스스로가 이기적이고 성격 더럽다는 걸 반증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