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큰 기대를 하고 간 공연은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간곡한 초대가 있었고, 공연을 하는 가수보다는 모처럼 친구를 본다는 설렘이 더 컸기 때문에 서울행 버스를 탄 참이었습니다.여기서 아예 가수 이름을 밝히고 가야겠군요. 제가 그날 만난 사람은 이미배 씨입니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아! 이미배…”하겠지만, 젊은 층은 대개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이미배 씨에게는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겁니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음악적 영역을 구축하고 확고한 팬 층을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서울에 갔습니다. 친구들과 모임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뒤 한잔 더 할 곳을 찾다가, 한 친구가 포장마차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인 덕이지요. 포장마차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 어릴 적에 묻어놓았던 구슬이라도 찾아낸 듯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막상 찾아보니 전에 함께 다니던 곳의 포장마차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여기였는데? 느닷없이 청춘이라도 잃어버린 듯 모두 망연한 표정이었습니다. 도심에서 포장마차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 아니지만, 설마 했던 것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산골마을로 들어와 살게 된 뒤로는 아침 산책을 빼놓지 않습니다. 일과의 시작이기도 하지요. 어느 땐 첫 이슬을 따며 숲길을 걷기도 하고 어느 땐 물안개를 보러 냇가까지 가기도 합니다. 이곳에 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 강아지 한 마리가 동행합니다. 산책의 목적에는 강아지의 배변도 있습니다. 지인이 기르다 보냈는데 훈련이 잘돼 있어서 집 근방에서는 절대 배변을 하지 않습니다. 집과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들어간 뒤에야 볼일을 보고는 하지요. 그럴 때마다 괜스레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올라 혼자 씁쓰름하게 웃기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친구가 차를 멈춘 곳은 작은 시골동네였습니다. 작은 동네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은, 뭔가 부조화스러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양복을 입고 넥타이 매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술집과 모텔, PC방 같은 간판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가 의아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해줬습니다.“여기가 천도리야. 한 때는 라스베이거스라고 부르던 곳이지. 대단한 환락가였어. 원통, 심지어 인제 사람들도 이곳으로 술을 마시러 왔으니까.”“이 작은 동네가? 그런데 왜 ‘한 때’야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일찌감치 아침을 차려 먹고 문을 활짝 엽니다. 빗소리가 바람을 타고 우르르 밀려들어옵니다. 산골인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살갗에 돌기들이 우수수 일어날 만큼 쌀쌀하지만, 늘 그렇듯 가슴 설레는 아침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뻐꾸기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아!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존재가 지척에 있다니요. 날마다 제 창을 두드리는 저 녀석은 아직까지도 짝을 찾지 못한 게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다급하면 쉬지 않고 여명을 열어젖힐까요.그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고개를 주억거리다, 커피 물을 올립니다. 서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언뜻 봐도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오랫동안 볕을 못 본 것처럼 창백한 얼굴, 굽은 등과 어깨… 세상 구경 처음 나온 아이처럼 자꾸 두리번거렸습니다. 처음에는 한 마디쯤 하려고 했습니다. “거기는 제 자리인데요?” 이 말을 입안에 몇 번 굴리다 옆자리에 그냥 앉고 말았습니다. 모처럼 타는 무궁화호 열차였습니다.일부러 창가로 예매한 내 자리에 그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왜 남의 자리에 앉는 걸 예사로 안담? 창가자리에 앉고 싶으면 표를 끊을 때 그렇게 달라고 하든지….’ 혼자 속으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뉴스 보기 겁난다는 말이야 하루 이틀 해온 건 아니지요. 그만큼 살벌한 소식들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뉴스 시장이 신문과 TV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겁나는’ 소식들은 더욱 빨리, 더욱 많이 세상에 뿌려지고 있습니다.요즘 뉴스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단어’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성(性)’입니다. 성폭행, 성폭력, 성추행, 성…. 그런 말이 붙은 뉴스일수록 더 빨리 진화하고 더 빨리 전파됩니다. 친구를 만나도, 시장에 가도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다.”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방학 중인 대학 캠퍼스는 한산했습니다. 학생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길을 묻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는 ‘펄펄 끓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분주했습니다. 취업과 관련된 부서였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몇 개 대학을 순례하는 참이었습니다. 정부-대학-기업이 연계하여 학생이 학기 중에 기업에서 실습을 하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취재하는 중이었습니다.취업부서가 방학 중에 더 바쁠 수밖에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그녀는 젊고 고왔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흔히 쓰던 단어, “새댁”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어느 도시의 음식점에서 만난 중국인 종업원 이야기입니다. 주문을 받는데 한국말이 무척 서툴렀습니다.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음식점에서 꼭 필요한 몇 마디 말만 급하게 배운 모양이었습니다. 묻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우리말에 익숙한 조선족이 아니라 한족이었겠지요.주문을 받은 그녀가 방에서 나가고 잠시 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보이지는 않아도 상황이 저절로 그려졌습니다. 누군가 쟁반을 들고 가다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모처럼 서울에 온 선생님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술자리가 밤이 이슥하도록 끝날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 인제 골짜기에 혼자 기거하며 글만 쓰는 분입니다. 스스로 ‘변방의 시인’임을 자처하면서 대처에는 가능하면 발걸음을 하지 않습니다. 시인 무리에 잘 섞이지도 않습니다. 제게는 문단의 대선배이자 스승 같은 분입니다.결국 선생님이 막차를 타야할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술꾼들이 흔하게 하는 습성이 있지요. “에이~ 이왕 늦은 거….”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습니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어느 도시로 강연을 하러 간 날이었습니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서울까지 올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일부러 하루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 도시 인근에 젊은 후배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낙향의 이유는 기억에 없던 터였습니다. 그의 고향이 제가 강연할 곳과 멀지 않다는 것도 본인의 전화를 받고서야 생각났습니다. 공교로운 일치였습니다.그가 전화를 한 것은 강연 며칠 전이었습니다. 쭈뼛거린다고 하나요?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달리 목소리에는 망설임 같은 게 묻어 있었습니다.“형님,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가을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초대장이 날아듭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활동하기 좋은 때가 되면 무리부터 짓는 모양이라며 혼자 웃습니다. 초청장이 아니더라도 카카오톡이니 밴드니 하는 ‘문명의 총아’들이 각종 행사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용자들의 연령대도 높아져서, 50~60대도 소위 ‘단톡방’이라고 부르는 단체 대화방에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제가 다닌 학교의 동문회도 가을에 열리는 큰 행사를 앞두고 단톡방을 열었습니다. 체질적으로 집단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저는 여전히 ‘구경꾼’의 자리에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게 있지요. 무슨 소린지 궁금한 분들도 있겠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는 뜻인데요. 가정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요. 무엇보다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고, 또 그 누구도 내 삶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선언이 아닐까 해석해 봅니다.하지만 제 세대쯤 되는 이들은 여전히 ‘혼밥’이나 ‘혼술’이 낯설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명소 중 하나인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그곳에 갔을 때 먼저 마음을 빼앗은 것은 역사적 유물이나 풍경이 아니라 거리 음악회였습니다. 원래는 빈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까지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그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만큼 행복한 음악회였습니다.음악회는 광장 한 가운데의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앞에서 열렸습니다.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연주자들은 세련돼보였고 관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감미로웠습니다. 연주자가 20명이 넘는 제법 규모 있는 악단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빽빽
여기저기 다닌다는 것은 이 애기 저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처럼 ‘여행자’의 이름을 앞세워 길 위를 떠도는 사람은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는 흘려보내고 말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내용도 많습니다.충남 어느 도시의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깥노인 세 분이 식사 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더니, 그 중 한 분이 ‘은밀’을 가장해서, 사실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거시기, 그 말 들었어?”“무슨 말?”“홍준표가 문 닫게 한 도립병원인가 의료원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이 탓’을 하는 수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술집에 가면 망설임 없이 막걸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이 주도했던 ‘막걸리 유행’이 시들해진지도 꽤 됐는데 웬 늦바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막걸리가 밥이여”라고 자주 말하던, 청년기에 몸담았던 건설현장 감독이 가끔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요즘은 전국의 막걸리를 함께 파는 술집이 꽤 여럿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이것저것 골라서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입이 둔감한 저도 이 막걸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낡은 운동화를 빱니다. 워낙 오래 신어서 열심히 빨아도 후줄근하지만, 세상을 함께 떠도는 도반이니 나름 정성을 다합니다. 여행자인 제게는 여정이 무사하길 바라는, 다시 떠날 수 있도록 떠난 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입니다.운동화를 빨다보면,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제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이상하리만치 신발만큼은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어린 시절까지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지지리 가난해서’ 멀쩡한 신발을 신었던
올 봄도 미세먼지가 화두입니다. 눈을 어디에 두어도 뿌연 먼지. 피어나는 꽃조차 무색할 정도입니다. 얼마나 극성인지 서울의 공기 질이 스모그로 유명한 베이징보다 나쁘다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저 같은 여행자들도 난감해집니다.어느 지방도시에 들렀던 길. 점심을 간단하게 때울까 싶어, 엉성하게 둘러친 포장마차에 들어가다가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튀김이나 핫도그, 도넛, 꼬치어묵 등을 파는 집이었는데, 좌판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게릴라처럼 숨어드는 먼지를 당할 방법이 없었겠지요. 그 먼지
굳이 이유를 대자면, 남쪽으로 성급한 봄 마중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해토머리 바람은 겨우내 품었던 칼날을 감췄고 부드럽게 풀어진 들판은 새 계절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집 마당이라도 들어선 듯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마침 점심시간이라, 바다가 멀지 않은 소읍의 음식점을 찾아들어갔습니다. 백반이나 찌개 몇 가지를 파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뜻밖에도 꽤 북적거렸습니다. 아주머니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할머니라고 부르면 섭섭해 할 초로의 동네 분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
쿠바를 여행하다 보면 한낮에도 고등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습니다. 우리 같으면 학교에서 졸린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거나 학원으로 달려가야 할 시간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 학생들은 거리에 있기 일쑤입니다. 누구는 한국에도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다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쿠바 아이들은 우리처럼 ‘결박당한 청춘’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쿠바의 학생들도 교복을 입습니다. 초등학생은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