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공포를 유발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상 나를 향해 총을 겨누는 적일 수도 있다는 공포는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 요즘, 아니 예전부터 다수가 느껴왔던 공포였을 것이다.나는 화장실 한쪽 벽면에 비이상적으로 많은 나사 구멍들을 본 후로 불법 촬영 문제와 마주했다. 뉴스 속에서만 보던 일이 내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 한번 인식하기 시작하자 꽤 많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카메라가 있을지, 내가 어디선가 찍혀 돌아다니
[오피니언타임스=김봉성] 명절의 자연사(自然史)는 농업에서 비롯되었다. 설부터 농사를 준비하기 시작해 추석에 수확을 완료했다. 음력은 필연이었다. 현대에도 차표, 교통체증, 선물, 화목 등으로 자연사를 유지했다. 그러나 차표 예약의 난도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으며 교통체증도 예전만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선물은 돈으로 해결했고, 화목은 글쎄다. 명절은 산업 시대와 정보화 시대를 압축적으로 건너온 현대의 음력 같다. 일상과 겹쳐지지 못하고 자연사(自然死) 중이다. 명절이 되면 의무감으로 고향에 가고, 관심도 없는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제주 애월읍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습니다. 엄마는 바다가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바다가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이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이리가든 저리가든 도착지는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바다로 직행할 수 있는 다리가 보였고 검은 색 바위들이 즐비했습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바다와 마주하기 위해 다시 걸었습니다. 파도가 보였습니다. 세차게 치지만 부드러운 손길. 넉넉하지만 애틋한 순간. 파도에 그
[오피니언타임스=서은송]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던 중 있었던 일입니다. 3시간 넘게 연이어 강의가 이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들 졸고 있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 비파를 켜며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
[오피니언타임스=최미주] 어린이집 시절, 배려를 한답시고 오빠 필통의 샤프심을 산산조각 낸 일이 있습니다. 샤프심을 더 많이 만들면 칭찬받겠지 하는 생각에 저지른 일입니다. 기분이 들떠 ‘오빠, 나 잘했지?’ 하고 샤프심을 내미는 순간 오빠는 이게 뭐냐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칭찬 받으려 한 행동이 영문도 모른 채 수포로 돌아가 무척 속상했습니다.위와 같은 사건들은 세상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가난하게 살던 부부가 늘 식빵으로 허기를 채웠는데,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식빵 끝부분만 주더라는 겁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서운함을 표출하
[오피니언타임스=허승화] 휴가철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이 되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공항을 통해 출국을 한다. 돈 아끼기 좋아하는 우리 언니도 외국으로 가니 말 다했다. 저가항공이 무척 성장한 만큼 옆나라 일본이나 동남아 국가는 쉬운 휴가철 선택지가 되었다.국내 저가 항공사의 항공기를 타고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에 가면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도시 중심에서 꼭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한다는 사실이다. 그 얼굴은 바로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다. 그 뿐 아니다. 저가항공사 취항지의 중심에는 늘 수많은 한국인들이 몰려있곤 한다. 이런
[오피니언타임스=이하연] 택배를 받았다. 상자 안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있다. 어쩌다 급박하게 이 책들을 주문했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직관적으로 재빨리 책을 선택하고 결제를 완료했다. 그러고 보면 늘 이런 식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사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당장 구매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돈까지 완벽하게 입금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완벽한 충동구매인 셈이다.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가 아니다. ‘이건 사야 돼’.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때가 되면 사리라, 하는 책들은 거
여행의 시작7월,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를 챙긴 딸과 그의 부모님이 인천공항에 들어섰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조차 혼자 다녀본 적 없는 딸이 홀로 23박 24일의 해외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혼자 보내는 외국여행이 내심 걱정되는 듯 아빠는 공항은 어떻게 이용하고 경유는 어떻게 하는지, 해외에서 어떻게 다녀야하는지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엄마는 빠진 물건은 없는지, 기초 회화는 할 수 있는지, 숙소 주소는 알고 있는지 내내 걱정하다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표 취소해도 된다’며 딸의 결심을 회유해본다. 엄마의 권유에 잠깐 흔
[오피니언타임스=신영준] “마케팅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대학시절 들었던 한 강의에서 이름 소개도 건너뛰고 나온 교수님의 첫 질문이었다. 많은 대답들이 나왔지만 교수님께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대학에서 소비자는 누굴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 “학생들이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대학의 소비자는 여러분들의 부모님입니다. 그리고 기업의 채용관계자들이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의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시간관념과 수업예절 같은 것에 집착하셨고 취업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작년에 읽었던 그 책을 다시 편다. 조남주 작가의 이다. 필자는 작년 5월 이 책을 읽고 에 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상대적 강자였던 남성으로서 제 주위 김지영들에 대하여 너무도 몰랐다는 자책에 고개를 들기가 어렵습니다. 92년생, 02년생 12년생 김지영들은 앞으로 ‘맘충’ 따위의 소리를 듣지 않는 정상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맘충’ 따위의 소리를 듣지 않는 정상적인 세상이 도래했는지 자문해보니 긍정적인 답을 내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처럼 말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아무리 좋은 의미로 한 말이라 해도 쓴소리가 반복되면 듣는 사람은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낀다. 반대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인데, 악의 없이 하는 말이라는 점과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꽤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다.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무 말랐다”, “많이 좀 먹어야겠다”, “살 좀
[오피니언타임스=이명렬] 가고시마. 왠지 가고 싶게 만드는 일본 규슈 섬 남부의 도시다. 가고시마에 도착한 이방인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잿빛 화산재다. 검은 모래가 도시 곳곳을 휘덮고 있다. 화산재의 주인은 가고시마 항구 건너편의 사쿠라지마 화산섬이다. 제주도 같은 휴화산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활화산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용암이 이글거리는 거친 화산은 아니지만, 빈번히 분화하며 화산재를 바다 건너 도심으로 배달하는 성실한 화산이다. 내가 도착한 날에도 화산은 연신 잔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시큰둥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오피니언타임스=김우성] 두 달 전 동생이 입대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한창 훈련 중인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을지, 더위에 지치지는 않는지 늘 걱정하던 우리 가족은 종종 동생에게 편지를 쓰고 택배로 생필품을 보내주었다. 식을 줄 모르는 폭염의 열기와 심란한 심정이 맞물려 이번 여름이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졌다.얼마 전 동생이 훈련병 딱지를 뗐다. 수백 명 청년이 정복을 입고 연병장에서 수료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3년 전에 나도 그 자리의 일원이었던지라 감회가 남달랐다. 모든 절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정치인, 연예인, 사회적 저명인사 등 셀럽(유명인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폭로가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 있다.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셀럽의 비도덕적인(대부분 범죄에 가까운) 행위가 드러난다. 주로 성과 관련된 문제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가해자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다) 사람들은 반으로 갈라져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의 폭로에 대한 숨은 의도를 묻는다.많은 경우 정작 당사자는 잠적하거나 침묵을 지킬 때, 셀럽의 지인이 등
[오피니언타임스=한성규] 2019년 시급이 8350원으로 확정됐단다. 최저임금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죽겠다, 죽겠다 난리고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느니, 그 잘산다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저임금이 4위로 높다느니 생난리다. 2019년이 되면 GNI대비 최저임금이 호주를 당당히 제치고 3위가 된단다. 마침 호주는 내가 살던 뉴질랜드 옆 나라라 뻔질나게 간 곳이었다. 우리나라가 호주보다 최저임금이 높아진다고? 믿을 수 없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공적인 글이라 참는다.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GNI대비라고? 이건희 같은 부자들과 한 달에
[오피니언타임스=고라니] 체코 프라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 작은 도시 호테르보르시(Chotěboř)에 베네딕투스 공동체(Community Housing Benediktus)가 있다. 이곳은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사는 작은 NGO다. 10명 남짓의 공동체 사람들은 두 채의 건물과 넓은 마당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같이 논다.매일 아침 8시에 전체회의가 열린다. 거창한 자리는 아니다. 어젯밤 창문을 열고 자는 바람에 감기기운이 있다거나, 저녁식사 후에 새로 산 보드게임을 하자는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최근
[오피니언타임스=시언] 완성된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묘한 이질감과 부딪친다. 나를 소개하고자 쓴 자소서였으나, 자소서 속의 나는 낯설었다. 자소서에 담긴 내용이 전부 ‘사실’이긴 했다. 1년간 기자단 기자로서 매주 기사를 썼으며, 몇몇 작문 대회에서 입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실’들의 나열은, 내 삶에 관한 ‘진실’을 얼마나 잘 대변해 주고 있는가. 이게 정말 나이긴 할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자소서 작성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출 것과 읽는 이가 흥미 있어 할 소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보이콧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중 하나이다. 보이콧이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작품에 대한 성실한 이해와 비평이 필수적이다. 그 작품이 비윤리적이라 보이콧한다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창작자와 창작물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 어떤 이유에서 문제가 되는지 밝히는 것은 지루하고 고난한 작업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반론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물이 창작자를 떠나 세상에 던져진 순간 비판과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죽의 역사나의 유년기 기억을 되짚어 보면, 죽은 말 그대로 ‘죽이 아니면 안 될 때’ 먹는 음식이었다. 지독한 감기 몸살에 입맛이 사라졌을 때, 과식으로 심하게 급체했을 때,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 바로 죽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시절 내게 죽이란 대부분 희멀건 미음 같은 외관에 겨우 간장과 참기름 몇 방울뿐인 단출한 모양새였다. 또 죽은 어쩜 그렇게 매번 뜨거웠는지.그렇게 초라한 환자식 정도로만 여기던 죽의 역사는 사실 꽤 유구하다. 현재 인류가 주식으로 먹는 밥이나 빵은 고압고온으로 찌는 방식이기 때문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요즘 눈만 뜨면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읽는다. 26세에 세상에 발을 디딘 후 누군가의 자기소개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최근 1년간 여느 때보다 많이 읽고 있다. 이것을 독서량으로 환산한다면 어마어마한 권수의 책을 읽은 셈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묻어난 인생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입력한 문장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현재 한 회사의 인사담당자로서 취준생들에게 자기소개서 작성법에 대한 팁(Tip)을 주고 싶어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