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도 힘든 날이었다. 아침 9시에 중요한 발표를 마쳤다. 수업을 다 듣고, 서울로 이동해 대외활동까지 마치니 저녁 10시였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했다.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한참을 기다려 탔다. 출발지였던 만큼 승객은 얼마 없었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의자는 뒤로 젖혀있었다. 전 사람이 원복하지 않고 내렸나 보다. 자리에 앉았다. 꼿꼿하던 옆 의자보다 편했다.서울역에서 신촌으로, 신촌에서 홍대로 갈수록 승객들이 많아졌다. 사람 많은 금요일 저녁이다. 송도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는 몇 없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신년 계획에 실패해 왔다. 파워 J인 나는 새해만 되면 계획을 세웠고, 빈번히 실패했다. 계획 실패에 관해선 권위자다.성공적인 신년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어렵고 주제넘는다. 오히려 내가 그간 잘해왔던 '어떻게 하면 신년 계획이 실패하는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반면교사랄까. 이 방법만 피하면 신년 계획을 망치는 일은 피할 수 있다.실패한 자기 객관화누구나 학교 다닐 때 방학 계획표를 작성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계획을 짜는 당시에는 뜨겁다. 무슨 일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계
만약 누군가 내 뇌를 전부 백업해서 다른 사람 육체에 넣으면 그건 나일까, 아닐까.오전까지 멀쩡하던 컴퓨터가 점심 먹고 돌아오자 먹통이 됐다. 창 닫기를 여러 번 눌러도 엑셀과 파워포인트가 그대로다. 노트북은 큰 소리를 내면서 팬이 돈다. 전원 버튼을 꾹 눌러 노트북을 강제로 종료한다. 다시 전원버튼을 눌러봤지만 깜깜무소식이다. 운명을 다 했다. 고작 이년 사용한 컴퓨터다.삶은 참 아이러니하지. 진료를 앞두면 진통이 멀끔해지고, 지저분했던 머리는 미용실 거울에선 알맞은 것처럼, IT담당자가 살포시 전원을 누르자 금방 켜졌다. 얄궂다
[논객닷컴=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필명인 청년실격이 탄생하게 된 비화는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신문 기사를 읽던 중이었다. 거기엔 매 끼니 라면을 먹는 공무원 수험생 하루를 타임라인으로 그렸다. 그리고 '오늘날의 청년'이란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신문에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를 그렸다. 시위 현장이었다. 옛날과 달리 정치에 적극적인 '오늘날의 청년들'과 비슷한 제목이 달렸다. 또 다른 강연에선 스타트업, 새로운 기술에 적극적인 청년을 그렸다. 이제는 취업보단 창업에 힘쓰는 '청년'에 대한 풍경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전 회사 팀장은 무능력했다. 내겐 첫 팀장이라 레퍼런스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유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입사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팀장이 오늘 조금 늦게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었다. 월 말이면 늘 있는 재고 마감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마치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는 확신의 눈빛으로 물론이고 가능하다고 답했다. 팀장은 반갑게 웃으며 저녁 먹고 와서 조금 더 얘기하자고 했다.그리고 나는 저녁 11시까지 그와 말도 안 되는 엑셀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취준생 땐 회사를 대학처럼 생각했다. 삼성전자는 서울대, 하이닉스는 연고대로 등치 했다. 주문같이 외워지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 시가총액을 대입했다. 행복도 비례할 것만 같았다. 1등 회사 입사자가 15등 회사 신입사원보다 15배만큼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재수, 편입을 하면서 못한 인서울을 취업이라는 구간에선 대기업으로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 대기업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일했다.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내가 원하는 직무로 옮기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는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지던 날을 기억한다. 복학한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바둑 규칙도 모르면서 그게 내 패배처럼 아팠다. 바둑은 어쩐지 인간만이 가능한 예술 같았다. AI에게 예술의 왕좌를 내어주는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제각기 충격을 줬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 중 잠깐 '이세돌 자리'에 앉아볼 수 있었다.미국 문학 거장 필립로스의 '울분'이란 책을 다루는 회차였다. 익히 들어온 작가라 기대하고 읽었지만 솔직히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했다. 2시간가량 모임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어떤 것에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청년칼럼니스트] 2021년, 수 십 번의 탈락 이후에 처음 정규직에 합격했다. 충청도에 있는 제약 회사였다. 입사하기 전까지 근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꼭 중요한 건 산업이었고, 두 번째는 직무였다. 그리고 그 기준에 정확히 부합한 회사였다.합격 소식에 “야호” 하고 소리 낼 만큼 좋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계약직으로 고용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어딘가 소속된다는 기분에 안락했다. 첫 출근까지 3주간의 시간이 있었다. 차분하고 여유롭게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첫 출근을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날 깨닫
[청년칼럼=이주호] "죽으면 값이 오른대"란 말은 "예술로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가 대답한 말이었다. 친구가 어이없어 하며 화를 내자 다른 친구가 머쓱한 듯 사과를 했다. 자기 딴에는 농담이라고 한 말이란다. 내가 봤을 땐 몇 번을 더 사과해도 부족할 실언이었다.그런데 '죽으면 값이 오른다'는 말은 불편하지만 '틀린'말은 아니다. 다시는 화가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까. 작가가 죽으면 작품 값이 오르는 걸 왕왕 보게 된다. 특히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은
[청년칼럼=이주호] 떠날 때면 항상 다음 행선지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선 중학교를 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선 고등학교를 갔다. 한번 미스가 있긴 했다. 나는 대학을 한 번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재수를 했다. 어쨌건 재수의 다음 목적지는 분명했다. 적어도 삼수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에 대학에 들어갔다.대학 생활이 순조롭진 않았다. 나는 경영학이라는 내 전공보다 문학에 더 기웃거렸다. 일 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이 년이 흐른 뒤엔 전역을 했다. 나는 곧바로 복학했다. 전공에 대한 내 불만은 더 심해졌다.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자본주의라는 서사는 경쟁을 메인 테마로 삼는다. 더 좋은 서비스, 더 낮은 가격을 위한 경쟁, 대중들에게 더 알리기 위한 경쟁이 그렇다. 적자생존이 그러하듯 이 게임에 패배자는 도태된다. 오늘날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유수의 기업들은 오랫동안 경쟁을 견뎌왔고, 견뎌내는 중이다. 그들이 우수했기에 경쟁을 이기고 대기업이 됐는지, 대기업이기에 쉽게 경쟁을 이겼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정도의 논란일 뿐이다. 꼭 자본주의 세계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경쟁은 자연의 법칙이다. 세계는 제로섬 게임
[오피니언타임스=이주호] 이번 학기에 고용관계론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경영학과는 사실상 “피피티 만들어서 발표하기 학과”와 다르지 않다. 사실상 이 같은 수업 방식도 교수들의 매너리즘 중 하나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천한 학부생이 어쩌겠는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처럼 노조를 설립해서 파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이번 팀 프로젝트 과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다. 피피티 만들기는 백색소음과 함께 카페인이 무척이나 필요한 작업이다. 다행히 우리 집 가까이엔 카페가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청년칼럼=이주호] 마케팅 공모전을 준비하던 중, 내 나이가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 되는 것을 알게 됐다. 밀레니얼 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높고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게임을 하면서 과제까지 하는 즉 멀티태스킹에 능한 세대”라고 한다. 듣고 보니 크게 이의제기 하고 싶진 않다. 나이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출생한 이들을 일컫는다.뒤집어 생각해보면 지금 경제활동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깐 20살부터 40살까지는 거의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 아버지도 '멀티태스킹에 능하다'는 것
[청년칼럼=이주호] 같은 말이라도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들린다. 나에겐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이 그렇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보거나, 답답한 사람들을 겪을 때 쓰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니, 뭐 얼추 맞을 수는 있는 말이다.“감기 걸릴 것 같다”라는 느낌은 잘 안다. 비가 내리는 데 우산이 없어 몸이 홀딱 비에 젖을 때면 으스스 한 느낌이 꼭 감기에 걸릴 것만 같다. 침을 삼킬 때도 편도가 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목감기에 걸릴 것 같은 징조다.
[청년칼럼=이주호] 일단 도서관에 왔다. 핸드폰으로 뒤적뒤적 늦장을 부린다. 글을 쓰자고 왔건만 글을 쓰기까지 어떻게든 늦춘다.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친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이 재밌다고 한다. 그러니깐 공부하려고 앉으면 책상 정리가 재밌고, 책상 정리를 하려면 안 쓰는 펜 정리하는 게 더 재밌어지는 것같이 말이다. 어찌 됐든 어느 경우에도 책상 정리를 하다 공부가 재밌어지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내가 꼭 저 모습이다. 글 쓰러 와서 글쓰기 빼고 다 했다. 페이스북, 인스타, 다음 카페까지 쭉
[청년칼럼=이주호] 여태껏 나는 이렇다 할 선배를 만난 적이 없다.20대 초반에 방황을 했다. 학교는 불만족스러웠고 내 주변은 엉터리 같았다. 누군가 대화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너무 진지하진 않지만 또 실없진 않는 대화 말이다.지난 주말 EPL 하이라이트 얘기는 고등학교 때 질리도록 했다. 이젠 그보다 조금 큰 대화를 하고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 비슷한, 혹은 뉴스에 나오는 얘기들, 많이 양보해서 읽고 있는 책 정도. 하지만 주변엔 시시한 사람들뿐이었다.내가 적극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 삶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깐.